'적자' 우려까지 나오는 시스템LSI 사업부는 책임자급 대폭 인사 불가피
그나마 나은 파운드리 사업부도 전략 놓고 의견 분분… "ASIC과 IP 발목"

올 연말 삼성전자 정기 인사에서 가장 눈여겨봐야할 대목은 DS부문 내 비메모리 사업을 이끌고 있는 두 사업부의 변화다. 김기남 삼성전자 부회장이 강조했던 시스템LSI와 파운드리 간의 각자도생이 사실상 실패했다는 점에서 최소 중폭 이상의 인사가 이뤄질 것이란 관측이다.

상대적으로 자생력을 갖춘 파운드리 대비 성과가 미진한 시스템LSI쪽 인사폭이 더 클 것으로 예상된다.

 

유예기간은 끝났다

지난 2017년 두 사업부가 분리될 당시 김기남 삼성전자 부회장이 두 사업부에 던져준 과제는 각자도생이다. 두 사업부가 서로의 힘 없이도 글로벌 시장에서 자리매김하라는 의미다. 김 부회장은 올해 초에도 두 사업부에 독자생존 체제를 강화할 것을 강조했다.

김 부회장의 구상이 현실화되면 시스템LSI 사업부는 완전한 팹리스 회사로, 파운드리 사업부는 대만 TSMC 같은 순수 파운드리 업체로 발돋움하게 된다.

다만 두 사업부 분리와 함께 삼성전자는 일종의 유예장치를 뒀다. 상호 독점 생산 계약을 맺게 해 시스템LSI의 물량 전체를 파운드리 사업부가 만드는 구조다. 두 사업부가 몸은 분리된 상태지만, 아직 비즈니스 적으로는 얽히고 섥힌 셈이다. 

그리고 이 계약은 내년 만료된다. 즉, 올해는 김 부회장이 주문한 각자도생 성적표를 받아드는 마지막 해이자 그에 대한 책임을 묻는 시점이 될 가능성이 높다. 

 

시스템LSI, 책임자급 경질 예상... 문제는 그 다음

삼성전자의 5G 모답(ModAP) 칩 '엑시노스 980'./삼성전자 

당장 시스템LSI 사업부는 대규모 인사가 불가피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분리 후 이렇다할 실적을 올리지 못했기 때문이다. 파운드리 사업부처럼 대규모 설비투자 비용이 들지 않음에도 고객사 확보에 실패하면서 올해 적자를 낼 것이라는 전망까지 나온다.

시스템LSI 사업부의 메인 제품은 AP와 상보성금속산화물반도체(CMOS) 이미지센서(CIS), 디스플레이구동칩(DDI) 정도다. AP는 중국 영업을 강화했지만 별 실적을 내지 못했고, CIS 또한 좀처럼 소니의 점유율을 넘어서지 못하고 있다.

DDI는 대부분의 디스플레이 제조사들이 자회사나 협력사 형태로 DDI 설계 업체를 두고 있는 상황이라 삼성 외엔 팔 데가 없다. 여기에 전방 시장 정체까지 맞물린 상황이다. 5G 모뎀과 모답은 퀄컴은 물론 하이실리콘·미디어텍 등 중화권 경쟁사보다도 개발이 늦었다. 

 

강인엽 삼성전자 시스템LSI사업부장(사장·오른쪽 두번째)이 8일 서울 삼성동 코엑스에서 열린 '전자산업 60주년 기념행사'에서 금탑산업훈장을 받고있다. [사진=삼성전자 제공]
강인엽 삼성전자 시스템LSI사업부장(사장·오른쪽 두번째)이 '전자산업 60주년 기념행사'에서 금탑산업훈장을 받고있다. 강 사장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직접 스카웃을 해올 정도로 영입에 공을 들였던 인물이다./삼성전자

이에 이번 인사에서는 각 개발실장과 팀장급에서 책임을 질 것이라는 관측이 우세하다. 사업부장인 강인엽 사장은 자리를 보전할 것으로 보인다.

특히 시스템LSI 사업부는 R&D 중심으로 조직이 짜여져 있어 영업과 마케팅이 취약하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이번 인사에서는 영업과 마케팅 인력이 상당 부분 보완되는 방향도 유력하게 점쳐진다.

R&D 조직도 변화가 불가피하다. 시스템LSI 사업부는 분리 후 신성장동력을 찾기 위해 터치디스플레이구동칩(TDDI) 등 R&D 과제 수를 대폭 늘렸지만 상당 부분이 중단됐다. 삼성전자의 ‘규모에 맞지 않다’는 이유에서다. 

하지만 비메모리 반도체 중 단일 품목으로 수천억원 이상의 총 가용시장(TAM)을 가진 제품은 찾기 어렵다. 전력 반도체 등 그나마 수량도 많고 미래 성장 가능성도 높은 품목은 이미 글로벌 업체들이 시장을 선점하고 있다.

이미 변화는 시작됐다. 최근 삼성전자는 중앙처리장치(CPU) 개발 등 오스틴에 있던 R&D 인력 250여명을 구조조정했다. 사업성도 나쁘고 자체적으로 개발해봤자 경쟁사만큼 실적을 낼 수 없을 것이란 판단에서다. 

문제는 그 다음이다. 시스템LSI 사업부의 인력 구조는 모래시계와 역피라미드 중간쯤이다. 책임자급은 많지만 실무 인력들은 적다. ‘허리’에 해당하는 중간관리자급은 더 부족하다. 이 중간관리자급에서 리더급으로 꼽히는 인물은 더더욱 드물다.

업계 관계자는 “비메모리 업계에 속한 모두가 뚜렷한 신성장동력을 찾지 못한 상황에서 시스템LSI가 불과 3년만에 각자도생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며 “인사로 관리자에 오른 이들이 이 한계를 극복할 수 있을 정도로 리더십이 있을지는 의문”이라고 말했다.

 

전략 재수립하는 파운드리, 쟁점은 두 가지

▲ 5월 14일(현지시간) 미국 산타클라라에서 열린 '삼성 파운드리 포럼 2019'에서 삼성전자 파운드리 사업부 정은승 사장이 기조 연설을 하고 있다.
지난 5월 14일(현지시간) 미국 산타클라라에서 열린 '삼성 파운드리 포럼 2019'에서 정은승 삼성전자 파운드리 사업부 정은승 사장이 기조 연설을 하고 있다./삼성전자

시스템LSI와 비교하면 파운드리 사업부는 상대적으로 상황이 양호하다. 실적은 아직이지만 고객사는 잡아놨다.

2017년 분리 당시만 해도 TSMC에 크게 밀렸던 파운드리 사업부는 7나노 극자외선(EUV) 공정을 성공적으로 양산했다. EUV를 적용해 만드는 층도 TSMC보다 많아 기술적으로는 더 완성도가 높다.

경쟁사에 비해 크게 부족했던 후공정 및 공정자산(IP)의 선택폭도 넓혔다. 

팬아웃(Fo) 옵션은 웨이퍼레벨패키지(WLP)와 패널레벨패키지(PLP) 모두에서 지원한다. 값비싼 2.5D 인터포저를 대체할 수 있는 재배선층(RDL) 인터포저도 개발했다. IP는 8인치 생산능력(Capacity)을 늘리면서 넓히기 시작, 올해 파운드리 포럼에서는 확장 로드맵까지 공개할 정도로 적극적이다.

7나노 자체에선 TSMC에 밀려 대형 고객사를 잡기 쉽지 않았지만 글로벌파운드리(GF)가 7나노 공정을 포기한 게 호재가 됐다. 

GF의 오랜 고객이었던 IBM이 삼성전자를 택했고, 테슬라 또한 삼성전자와 손을 잡았다. 모두 수량은 많지 않지만 납품 실적(Reference)을 쌓기에는 더할나위 없는 건수다. TSMC로 옮겨갔던 퀄컴도 5G 모뎀과 애플리케이션프로세서(AP)를 결합한 모답(ModAP) 칩 등을 삼성에 맡겼다. 

이 덕에 경질에 가까운 대규모 인사는 최소화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내부적으로 전략을 다시 세우고 있어 올해는 이에 따른 소폭 인사가 있을 예정이다. 

업계 관계자는 “2021년까지 중장기적으로 전략 수립을 완료한다는 계획”이라며 “올해는 큰 틀만 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아직 파운드리 사업부 내부에서는 미래 전략을 두고 의견이 분분하다. 전략 수립에 발목을 잡는 요소가 몇 가지 있기 때문이다.

 

파운드리 생태계 강화를 위해 열린 'SAFE 포럼'에서 삼성전자 파운드리사업부 박재홍 부사장이 기조 연설을 하고 있다./삼성전자
파운드리 생태계 강화를 위해 열린 'SAFE 포럼'에서 삼성전자 파운드리사업부 박재홍 부사장이 기조 연설을 하고 있다./삼성전자

첫 번째는 인공지능(AI)·자율주행·가상화폐 등으로 생각지도 못하게 급성장한 전용 반도체(ASIC) 서비스다. 

독립 전, 삼성전자의 ASIC 서비스는 파운드리 업계에서 ‘최고’라 불릴 정도로 뛰어났다. 하지만 ‘퓨어 파운드리’와 맞지 않다는 이유로 양 사업부 분리 당시 ASIC 인력들은 대부분 시스템LSI 사업부에 남았다. 일부 설계 후반부(Back-end) 인력만 파운드리 사업부 산하 디자인 플랫폼 개발실에 뒀을 뿐이다.

문제는 서로 하는 일이 겹치면서 비효율적인 구조가 된데다 두 팀이 서로 경쟁까지 한다는 점이다. 

먼저 파운드리 사업부 내 디자인 플랫폼 개발실은 플레이스앤라우팅(P&R) 설계 이후만 하기 때문에 앞단인 RTL(Register Transfer Level) 설계를 맡기려면 여전히 시스템LSI 사업부를 거쳐야한다. ASIC을 맡기는 고객사 입장에서는 여전히 삼성전자 시스템LSI 사업부와 파운드리 사업부가 한 몸인 셈이다.

디자인 플랫폼 개발실이 작년부터 시높시스, 하만커넥티드서비스, 에스앤에스티, 코아시아, 세미파이브 등으로 디자인하우스 협력사와 ASIC 협력사를 늘린 것도 이 때문이다. 그리고 이같은 움직임은 시스템LSI 사업부의 반발을 샀다.

업계 관계자는 “‘퓨어파운드리’를 표방한만큼 ASIC 기능 전체가 시스템LSI 사업부 산하로 통일될 가능성이 높지만, 그렇게 되면 또다시 ‘삼성 자체 물량에 외부 ASIC 서비스가 밀린다’는 우려를 살 수 있다”며 “당장 5나노도 TSMC에 밀리는 상황이라 선택과 집중을 하는 건 맞다” 말했다.

두 번째는 IP다. 두 사업부가 한몸이었을 때 개발한 IP를 놓고 한창 의견을 조율하고 있다. 

현재는 시스템LSI 사업부가 IP를 가져갈 확률이 높지만, 그렇게 되면 가뜩이나 설비 투자까지 해야하는 파운드리 사업부에 더 큰 비용 부담을 지울 수 있고 파운드리 사업부의 약점 중 하나인 IP 포트폴리오도 줄어들 수밖에 없다.

파운드리 사업부로 IP가 넘어갈 경우 시스템LSI 사업부에도 부담이 가는 건 마찬가지다. 가뜩이나 실적도 좋지 않은데 라이선스 비용까지 늘어나는 셈이기 때문이다. IP를 당장 개발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는 “IP를 공유하는 안도 이야기가 되고는 있는데 주(主)가 누가 되는지, 라이선스를 어디서부터 어떻게 공유할지를 두고 또다시 의견이 엇갈리고 있다”며 “단순히 두 사업부 간의 의견 조정이 아니라 DS 부문 전체를 고려해 결론이 나올 것”이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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