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에 지사 대신 계열사격인 '세미파이브' 세워… 조명현 지사장과 공동 대표
임베디드 MCU부터 서서히 점유율 늘릴 전망… 삼성 파운드리와 협력도 기대

RISC-V 기반 반도체 설계 업체 사이파이브가 한국 시장 공략을 본격화한다. 지사가 아닌 계열사 개념의 ‘세미파이브’를 세우고 박성호 전 삼성전자 시스템LSI 사업부 부사장을 영입했다. 

 

사이파이브, 한국에 계열사 ‘세미파이브’ 설립

 

사이파이브의 홈페이지 메인 화면에는 웹(클라우드) 기반 반도체 설계 페이지로 넘어가는 버튼이 있다. 저 버튼을 누르면, 원하는 칩을 고르거나 새로운 칩을 요구할 수 있다.
사이파이브는 업계에서 유일하게 ‘제로(0)’ ASIC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사이파이브의 홈페이지 메인 화면에는 웹(클라우드) 기반 반도체 설계 페이지로 넘어가는 버튼이 있는데, 버튼을 누르면 원하는 칩을 고르거나 새로운 칩을 요구할 수 있다./사이파이브 홈페이지

사이파이브는 최근 국내에 세미파이브라는 이름의 계열사를 세우고, 조명현 사이파이브코리아 지사장과 박성호 전 삼성전자 시스템LSI 사업부 SOC개발실장 겸 부사장을 공동 대표로 임명했다. 

외국계 반도체 업체가 한국에 지사가 아닌 계열사를 세우는 경우는 흔치 않다. 지난해 10월 한국법인 사이파이브코리아를 세운 지 1년도 되지 않아 체제를 개편했다. 

사이파이브코리아 인력은 세미파이브로 넘어갔고, 지사격이던 ‘사이파이브코리아’ 법인은 해체 수순을 밟고 있다. 올해 초까지만 해도 사이파이브코리아의 인력은 10여명이 채 안됐지만, 20일 기준 세미파이브의 인력은 25명이다. 현재도 우수 인력을 영입하고 있다.

이를 통해 국내 업체들로부터 수주한 엔지니어링 프로젝트도 본격적으로 시작했다고 회사는 설명했다. 사이파이브는 RISC-V 아키텍처 기반 코어 설계자산(IP) 라이선스나 이를 기반으로 한 전용 반도체(ASIC) 설계 서비스를 제공한다.

업계 관계자는 “외국계 반도체 업체 중 가장 적극적으로 한국 시장을 공략하고 있다”며 “삼성전자·SK하이닉스는 물론 중소 팹리스들과도 협력을 모색하고 있다”고 말했다.

 

‘AP만 20년’ 박성호 전 삼성 부사장 영입

 

박성호 세미파이브 공동대표. 삼성전자 재직 시절 사진이다./삼성전자
박성호 세미파이브 공동대표. 삼성전자 재직 시절 사진이다./삼성전자

박 대표는 삼성전자에서 20여년간 애플리케이션프로세서(AP)를 다뤄왔다. 코어 아키텍처부터 제조에 이르기까지 AP 개발 프로세스 전반을 파악하고 있다.

90년대 말 삼성전자가 디지털이큅먼트(DEC)와 함께 서버용 중앙처리장치(CPU) ‘알파칩’을 개발할 때도 박 대표가 주도적 역할을 했다. ASIC 사업팀을 거쳐 지난 2012년 AP 개발을 총괄하는 SOC개발실장을 맡았고, 이듬해 부사장으로 승진했다. 

2015년에는 파운드리 공정에서 ASIC을 제조할 때 필요한 공정자산(IP), 개발환경 등을 만드는 기반설계실의 실장을 맡았고, 2년 후 파운드리 사업부와 시스템LSI 사업부가 분리되면서 회사를 나왔다.

박 대표는 유한 성격으로, 기술에는 정통하지만 리더로서의 결단력은 다소 떨어진다는 평가도 받는다. 또다른 공동 대표인 윤 대표는 반대로 추진력이 강해 서로 부족한 부분을 채워줄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업계 관계자는 “박 전 부사장은 AP 설계부터 제조까지 전 영역을 경험한 인재”라며 “학자 마인드가 강하고 점잖아 선후배·동기에게 두루 호평을 받는다”고 말했다.

 

사이파이브가 노리는 시장, 그리고 삼성

 

삼성전자의 가전. 하나의 가전에는 수 개의 MCU가 들어간다./삼성전자
삼성전자의 가전. 하나의 가전에는 수 개의 MCU가 들어간다./삼성전자

사이파이브가 당장 겨냥하는 시장은 임베디드 마이크로장치(MCU)다. MCU는 사물인터넷(IoT) 등 엣지(Edge) 기기, 가전 등에 두루 들어가는데, 현재 국내 완성품 제조사들은 모두 Arm의 아키텍처를 활용한 MCU를 쓰고 있다.

사이파이브의 코어는 Arm의 코어텍스보다 라이선스 비용이 저렴하다. 기본적으로 오픈소스 하드웨어 아키텍처인 ‘RISC-V’를 활용하기 때문이다. RISC-V를 개발한 인력이 주축이 돼 설립된 회사라 RISC-V 진영 중에선 가장 기술력이 뛰어나다.

가장 큰 강점은 업계에서 유일하게 ‘제로(0)’ ASIC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는 것이다. 코어 아키텍처부터 원하는 대로 설계를 해줄 수 있다는 뜻이다. 다른 ASIC 업체들은 Arm 코어 아키텍처를 기반으로 ASIC 서비스를 제공하기 때문에 설계 유연성 측면에서 사이파이브에 밀릴 수밖에 없다.

국내에서는 그래픽처리장치(GPU) 기술력을 가진 넥셀이 아키텍처 설계를 포함한 ASIC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지만 역시 CPU 코어는 Arm을 쓴다. 

업계 관계자는 “사이파이브는 최근 삼성전자·SK하이닉스 등 국내 반도체 대기업으로부터 거액의 투자도 유치했다”며 “MCU에서부터 시작해 보다 고부가인 디지털신호처리장치(DSP) 시장에도 뛰어들 것”이라고 전망했다.

 

ASIC 서비스 업체 오픈실리콘은 지난해 사이파이브에 인수됐다./오픈실리콘 로고

사이파이브와 삼성전자 파운드리 사업부가 협력 관계를 구축할 것이란 전망도 있다. 

미-중 무역 전쟁이 악화된 후 Arm이 일부 IP 지원을 중단하면서 중국 시장에서 대체재에 대한 수요가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사이파이브는 지난해 인수한 ASIC 서비스 업체 오픈실리콘(Open Silicon)을 통해 중국에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오픈실리콘은 TSMC의 VCA(Value Chain Aggregator) 소속이지만, 고객사가 삼성전자 파운드리를 원할 경우 세미파이브가 중간 다리 역할을 할 수 있다. 

또다른 업계 관계자는 “이 경우 삼성전자는 중국 고객사를, 세미파이브는 ASIC 고객사를 확보하는 셈”이라며 “이 점을 겨냥해 삼성 파운드리 사업부에서 사이파이브를 밀어주고 있다는 얘기도 나온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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