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F 카메라와 결합하면 완벽한 MR 구현
UWB, 새로운 생태계 창조할 것

지난 2008년 상영한 영화 ‘다크나이트’. 주인공 배트맨은 LSI홀딩스 부회장 라우를 생포하기 위해 홍콩 LSI홀딩스 빌딩에 잠입한다. 불 꺼진 건물 내부에서 배트맨의 눈이 되어 주는 장비는 고주파 송수신기다. 스마트폰처럼 생긴 이 장치는 사방으로 고주파를 쏘고, 반사돼 돌아오는 시간과 감도를 수신해 주변을 3차원(3D) 시각화한다. 

마치 잠수함의 수중음파탐지기(SONAR) 처럼 파동을 이용해 주변 장애물을 감지하는 것이다. 이제 이 같은 매핑(Mapping) 기술이 스마트폰 속으로 들어온다. 시작은 애플부터다.

영화 다크나이트에서 고주파 송수신을 이용해 3차원 공간을 시각화 한 모습. UWB 기술이 고도로 발전하면 이 같은 서비스도 현실이 될 수 있다. /사진=다크나이트 영화 중
영화 다크나이트에서 고주파 송수신을 이용해 3차원 공간을 시각화 한 모습. UWB 기술이 고도로 발전하면 이 같은 서비스도 현실이 될 수 있다. /사진=다크나이트 영화 중

애플이 언급조차 않은 U1칩의 정체는?

 

지난 10일(현지시간) 열린 애플 ‘스페셜 이벤트’ 당시 애플은 온라인동영상(OTT) 서비스 ‘애플TV+’와 ‘아이폰11’ 시리즈를 소개하는데 긴 시간을 할애했다. 

필 쉴러 애플 부사장이 ‘아이폰11 프로’를 소개한 막바지, 그는 아이폰 신제품 특징을 정리한 슬라이드를 공개했다. 쉴러 부사장은 언급조차 하지 않았지만, 슬라이드 한 가운데 ‘애플이 디자인한 U1 칩(Apple-designed U1 Chip)’이라는 문구가 눈에 띈다. 

U1은 애플이 아이폰에 사용하는 애플리케이션프로세서(AP) ‘A칩’이나 애플워치용 ‘S칩’과는 완전 별개의 새로운 칩이다. 지난해 출시된 ‘아이폰XS’ 시리즈까지는 탑재되지 않았고, 이달 말 정식 판매되는 아이폰11 모든 모델에 처음 도입된다. 

스페셜 이벤트에서 운만 띄웠던 이 U1칩의 정체는 애플 공식 홈페이지에 간략하게 설명되어 있다. 홈페이지는 U1칩이 초광대역(UWB, Ultra Wideband) 기술을 이용해 아이폰이 주변공간을 인식하게 해 주는 센서라고 설명한다. 

필 쉴러 애플 부사장이 아이폰11 시리즈에 대해 소개하는 모습. 슬라이드 가운데 U1 칩에 대한 소개가 간략하게 나와있다. 쉴러 부사장은 이 날 U1 칩에 대해 언급하지는 않았다. /사진=애플
필 쉴러 애플 부사장이 아이폰11 시리즈에 대해 소개하는 모습. 쉴러 부사장 왼쪽에 U1 칩에 대한 소개가 간략하게 나와있다. 쉴러 부사장은 이 날 U1 칩에 대해 언급하지는 않았다. /사진=애플

애플은 이 초광대역 기술이 ‘에어드롭’ 기능과 결합에 수 있다고 예시를 들었다. 에어드롭은 동일한 와이파이 통신망에 물려 있는 애플 기기에 무선으로 파일을 공유하는 기능이다. 기존 아이폰은 에어드롭 공유 기능을 켜면 파일 공유 가능한 상대 목록이 뜨고, 그 중에 한명을 선택하면 파일이 전송된다.

그러나 U1칩이 탑재된 애플 기기끼리는 화면에서 상대방을 고를 필요가 없다. 상대방 아이폰 방향으로 특정한 제스처를 취하는 것만으로 파일을 보낼 수 있다. 예컨대 파일을 공유하고 싶은 상대방 쪽으로 화면을 스와이프(쓸어내는)하는 동작으로 파일이 전송된다. 

전송 가능한 상대방 이름을 보고 고르는 것 보다 훨씬 직관적이다. 이는 U1 칩을 탑재한 아이폰이 U1 칩을 탑재한 또 다른 기기의 위치를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기 때문에 가능한 기술이다.

애플 홈페이지에 U1 칩에 대해 간략하게 설명해 놓은 부분. 에어드롭 기능에 부가적으로 사용할 수 있다고 설명한다. /자료=애플 홈페이지
애플 홈페이지에 U1 칩에 대해 간략하게 설명해 놓은 부분. 에어드롭 기능에 부가적으로 사용할 수 있다고 설명한다. /자료=애플 홈페이지

마치 위성항법장치(GPS)가 특정 좌표로 기기의 위치를 파악하는 것처럼, 초광대역 통신은 나와 또 다른 초광대역 기기간 상대적 위치 정보를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게 해준다. 센티미터 단위로 오차 없이, 그것도 위성 신호가 닿지 않는 실내에서 말이다.

 

진짜 목표는 MR

 

애플이 U1 칩을 설명하기 위해 예로 든 에어드롭은 초광대역 위치정보 기술을 사용한 극히 일부 사례에 불과하다. 초광대역 기술을 이용하면 디바이스의 위치를 센티미터 단위까지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는 만큼, 지금까지 구현할 수 없던 훨씬 다양한 기능을 스마트폰으로 서비스할 수 있다. 

특히 애플이 내년쯤 아이폰에 도입할 것으로 보이는 ‘비행시간차(ToF)’ 카메라와 결합하면 혼합현실(MR, Mixed Reality) 실행을 위한 강력한 센서로 활용할 수 있다. ToF 카메라는 전방 사물을 인지할 수 있고, 초광대역 센서는 기기의 위치를 오차 없이 추정 가능하기 때문에 매우 정교한 MR을 구현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MR은 가상현실(VR)과 증강현실(AR)을 혼합해 실제와 거의 구분이 가지 않는 개념을 뜻한다.

이외에도 간단하게는 GPS 신호가 잡히지 않는 지하 아케이드나 건물 안에서 초광대역 신호를 이용해 지도 서비스를 활용할 수 있다. 건물 곳곳에 위치한 초광대역 신호 송신기를 통해 기기의 위치를 추정할 수 있기 때문이다. 

AR 버전 마인크래프트 티저 영상. /사진=마이크로소프트
AR 버전 마인크래프트 티저 영상. 초광대역 기술을 ToF 카메라와 결합하면 더욱 완벽한 AR, 나아가 MR까지 구현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사진=마이크로소프트

아직 애플이 U1 칩을 이용해 어떠한 서비스들을 준비하고 있는지는 베일에 가려져 있다. 그러나 애플이 초광대역 기술 도입을 공식화했고, 내년에 ToF 카메라 장착도 예정돼 있는 만큼 완전히 새로운 스마트폰 생태계가 창조될 것으로 기대된다. 

애플 특허 전문가이자 퍼스트아메리카카드서비스 CEO인 브라이언 로에밀리는 쿼라(Quora)에 기고한 글에서 “애플이 아이폰11 등 신제품 소개에 시간을 할애하느라 초광대역 기술과 관련된 발표는 미룬 것으로 보인다”며 “곧 U1 칩만을 위한 또 다른 발표 자리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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