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쟁사들 공급 부족 타개 위해 SiC 웨이퍼 생산능력 대폭 확대
국내 수요 없고 일본·유럽도 장벽 높아… 중국 SiC 시장 겨냥

SK실트론이 듀폰의 실리콘카바이드(SiC) 웨이퍼 사업을 인수하면서 향후 사업 전략에 관심이 쏠린다. 

당장은 SiC 웨이퍼 공급이 부족하지만, SiC 웨이퍼 제조사들이 연이어 생산능력 확대 계획을 발표했다는 점에서 이는 조만간 해소될 가능성이 높다. 더군다나 국내에는 아직 SiC 반도체 생산 업체가 없다. 잠재적 우군이 마땅치 않다는 뜻이다. 

그럼에도 SK실트론은 왜 SiC 웨이퍼 사업을 인수했을까. 

 

왜 SiC인가

SiC는 와이드밴드갭(WBG) 소재다. 실리콘(Si)보다 고온, 고열에 강하고, 단위면적 당 견딜 수 있는 전압 값도 높아 동일한 성능의 반도체를 더 작은 크기로 만들 수 있다. 스위칭으로 인한 손실도 적어 전력 효율도 높다.

 

실리콘(Si), 실리콘카바이드(SiC), 갈륨나이트라이드(GaN)의 물성 차이. SiC는 실리콘보다 밴드갭이 넓고 열전도성이 좋다.(자료=KIPOST 취합)
실리콘(Si), 실리콘카바이드(SiC), 갈륨나이트라이드(GaN)의 물성 차이. SiC는 실리콘보다 밴드갭이 넓고 열전도성이 좋다.(자료=KIPOST 취합)

이같은 특성 덕에 SiC는 주로 전력 반도체에 쓰인다. 이전까지는 일부 산업 기기나 태양광 설비에 탑재되는데 그쳤지만 최근 전기차(EV) 등 고전압 전력을 사용하는 자동차가 늘어나기 시작하면서 수요가 급격히 증가해 공급이 부족한 상황이다.

언뜻 봐서는 시장 분위기가 웨이퍼 업체에 유리해보이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SiC 웨이퍼 시장은 기술 특성상 진입하기도, 시장 점유율을 확대하기도 쉽지 않은 구조다.

SiC 웨이퍼는 실리콘과 마찬가지로 SiC 결정 잉곳을 성장시킨 후 이를 가로로 얇게 편편이 썰어 만든다. 이 잉곳을 썰 때 결정결함(결정 내 원자 배열이 흐트러져 결정의 물성을 바꿔버리는 결함)이 발생하는데, 이는 곧 소자의 성능 및 신뢰성을 저해한다.

결정결함은 웨이퍼 크기가 커질수록 제어하기가 까다롭다. 최근 2년간 6인치 생산 시설이 늘어났음에도 전체 SiC 웨이퍼 생산량이 눈에 띄게 증가하지 않은 건 이 때문이다.

 

SiC 에피택셜 웨이퍼에서 자주 발견되는 결함들./
SiC 결정 표면에서 자주 발견되는 결함들./리서치게이트

고난이도의 기술력이 요구되는 탓에 SiC 웨이퍼 시장은 표면 제어 기술을 가장 먼저 확보한 크리(Cree)의 자회사 울프스피드가 전체 시장의 60% 가량을 과점하고 있다. 나머지는 듀폰(다우코닝)·투식스(II-VI)·쇼와덴코·사이크리스탈(SiCrystal) 등 4개사가 근소한 차이로 점유율을 나눠 갖고 있다. 

인피니언 관계자는 “아직 6인치조차 수율이 높지 않고, 어떤 웨이퍼는 소자 면적 당 결함이 10개 이상 있는 경우도 있다”며 “대부분의 소자 업체들은 양질의 웨이퍼를 공급받기 위해 웨이퍼 업체와 장기 공급 계약을 맺고 있거나 웨이퍼 업체를 인수해 수직계열화한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여기에 최근 듀폰을 제외한 SiC 웨이퍼 업체들은 잇따라 생산능력(Capacity)을 확대하고 있다.

울프스피드는 지난 5월 올해부터 향후 5년간 총 10억달러(1조1913억원)를 투자, SiC 웨이퍼 생산량을 최대 30배 늘리겠다고 밝혔다. 투식스는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생산능력을 60% 확대할 계획이다. 

쇼와덴코도 올해부터 3년간 2500억엔(약 2조7637억원)을 들여 생산능력을 확장하겠다고 했다. 사이크리스탈 역시 로옴의 전력반도체 생산량 확대 계획에 발맞춰 생산능력을 늘리고 있다.

 

한국·일본·유럽은 어렵다

 

크리가 증설하고 있는 SiC 웨이퍼 생산시설 노스팹(North Fab)./크리
크리가 증설하고 있는 SiC 웨이퍼 생산시설 노스팹(North Fab)./크리

때문에 SK실트론이 당장 시장 점유율을 늘리는 건 한계가 있다. SK하이닉스나 SK하이닉스시스템IC가 SiC 반도체를 생산하는 것도 아니고, 국내를 통틀어봐도 일부 중소기업이 연구개발(R&D)만 하고 있을 뿐이다.  

그나마 가능성이 있는 건 LG다. LG전자 계열사인 실리콘웍스의 차세대 성장 동력 중 하나가 전력반도체다. 전사적으로 전장 사업을 밀고 있는 LG전자에서 이 시장에 높은 관심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실리콘웍스는 지난해 일본 SiC 소자 제조 업체와 합작사(JV)를 세워 SiC 전력 반도체 시장에 진출하는 방안을 검토하기도 했다.

회사 관계자는 “JV 건은 아직 정해진 게 없고, SiC 전력 반도체도 검토 중”이라고 답했다.

실리콘웍스에서 SiC 전력 반도체에 뛰어든다면 SK하이닉스시스템IC가 SiC 파운드리 서비스를 제공할 가능성이 높다. 

SK하이닉스시스템IC는 200㎜ 웨이퍼용 생산 라인인 M8을 중국으로 옮기고 있는데, 비워진 M8에서 무엇을 생산할지 정해지지 않았다. SK하이닉스시스템IC는 실리콘웍스의 디스플레이구동칩(DDI) 등을 외주생산해온 경험도 있다. 다만 M8이 완전히 비워지기까지는 4년정도의 시간이 걸린다.

가장 가까운 일본도 SiC 웨이퍼를 공급하기가 쉽지 않다. 로옴은 사이크리스탈을 인수해 SiC 웨이퍼를 공급받고 있고, 후지(Fuji)·미쓰비시 등도 쇼와덴코·스미토모(SICOXS) 등 현지 업체들로부터 웨이퍼를 공급받는다.

유럽도 마찬가지다. SiC 전력 반도체 시장은 ST마이크로·인피니언 등 유럽 소자 업체들이 강세를 보이고 있다. 이들 업체들은 이미 SiC 웨이퍼 업체에 지분 투자를 하고 장기 공급 계약을 맺은 상황이라 역시 뚫기가 만만치 않다.

로옴 관계자는 “성능 비교를 하기 위해 타사의 웨이퍼를 사지만, 양산은 사이크리스탈의 웨이퍼를 활용하고 있다”며 “당장은 시장을 확대하기가 어렵겠지만 장기적으로 Si 기반 전력반도체를 SiC 전력반도체가 대체하게 되면 이 수요를 확보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남은 건 중국

 

중국 전력 반도체 시장 규모 변화 추이./트렌드포스

시장 확대 가능성이 가장 높은 지역은 세계 1위 전기차 시장인 중국이다. 

중국의 테슬라로 불리는 웨이라이(NIO) 등 현지 자동차 업체들이 전기차에 SiC 전력 반도체를 채택할 계획을 세우면서 부품 업체들이 속속 SiC 전력 반도체 사업에 뛰어들고 있다. 중국 정부가 외산 부품을 자국산으로 교체하는 정책을 추진하면서 현지 전력 반도체 업체들의 성장 속도도 빠르다.

베이직세미컨덕터(BASiC Semiconductor)는 SiC 금속산화물 전계효과트랜지스터(MOSFET)를 생산하고 있고, 사난IC(Sanan Integrated Circuit)은 작년 말 6인치 SiC 반도체 제조 서비스를 시작했다. 

BYD마이크로일렉트로닉스는 SiC MOSFET을 개발, 2023년까지 현재의 Si IGBT를 SiC MOSFET으로 완전 대체하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중국 최대 고속철도회사 중처(CCRC), 실란마이크로 등도 이 시장에 뛰어들 채비를 하고 있다.

시장 조사 업체 욜(Yole)은 SiC 전력 반도체 시장 규모가 2018년부터 연평균 29%의 성장률(CAGR)로 커져 2024년 20억달러(약 2조3820억원)에 달할 것으로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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