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SK하이닉스 협상력 저하
日 수출 제한하면 AMAT 한 곳서만 수입해야

반도체 핵심 공정 중 하나인 확산(Diffusion) 공정용 장비 시장이 과점화되고 있다. 세계 최대 반도체 장비 회사 미국 어플라이드머티어리얼즈(AMAT)가 일본 고쿠사이일렉트릭 인수를 추진하면서다. 공교롭게 한일 무역 분쟁까지 맞물리면서 향후 확산 장비 수급이 불안정해 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어플라이드머티어리얼즈 연구원들이 실험하는 모습. /사진=어플라이드머티어리얼즈
어플라이드머티어리얼즈 연구원들이 실험하는 모습. /사진=어플라이드머티어리얼즈

확산 장비, ‘3강’에서 ‘2강’으로 정리

 

확산 공정은 실리콘 웨이퍼 위에 불순물을 주입해 특정한 성질을 띄게 하는 과정이다. 주로 붕소⋅인⋅비소⋅안티몬 등을 이온 입자 형태로 만들어 실리콘 입자 빈 자리에 끼워 넣어준다. 이 과정을 거쳐야 반도체가 비로소 소자로서 기능하기 때문에 확산 공정은 증착⋅노광⋅식각 등과 함께 ‘반도체 8대 공정’으로 꼽힌다.

확산 방식은 1000℃ 고온에서 입자를 분포시키는 ‘열 확산(Thermal Diffusion)’과 ‘이온주입(Ion Implantation)’으로 나뉜다. 최근 칩 집적도가 높아지면서 열 확산 방식에서 이온주입 기술로 넘어가는 상황이다. 

열 확산은 장비 가격이 싸고 유지관리가 간단하지만, 원하는 위치에 정확하게 이온을 주입하기가 어렵다. 이온주입 방식은 이온에 에너지를 줘 비교적 세밀하게 주입 위치를 컨트롤 할 수 있다. 비유컨대 열 확산이 상처에 연고를 넓게 펴 바르는 방식이라면, 이온주입은 바로 약물을 주사하는 기술이다. 다만 이온주입은 장비가 비싸고 유지보수 비용도 높다.

이온주입은 원하는 위치에 불순물을 주입할 수 있다. /자료=SK하이닉스
이온주입은 원하는 위치에 불순물을 주입할 수 있다. /자료=SK하이닉스

그동안 확산 장비 시장의 강자는 AMAT과 고쿠사이일렉트릭, 그리고 일본 도쿄일렉트론(TEL)이었다. 

지난 7월 AMAT이 고쿠사이일렉트릭 인수를 추진하면서 3강이었던 경쟁구도가 2강으로 정리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AMAT는 22억달러(약 2조6700억원)를 주고 KKR이 보유한 고쿠사이일렉트릭 지분 전체를 인수키로 했다. 인수가 마무리되면 세계 최대 반도체 장비 회사인 AMAT의 확산 장비 과점력은 더욱 강력해질 전망이다.

수요기업인 삼성전자나 SK하이닉스 입장에서 보면 3개였던 확산장비 업체 수가 2개로 줄면서 선택의 폭이 좁아진다. 특히 최근 한일 무역갈등 탓에 가뜩이나 일본으로부터의 소재⋅부품⋅장비 수급이 불안정해진 상황이라는 점에서 공급사 간 인수⋅합병에 촉각을 곤두세울 수 밖에 없다. 

업계 관계자는 “만약 일본이 반도체 장비에 대해서도 수출 제한 조치를 취한다면, 이제 확산 장비를 구매할 수 있는 곳은 AMAT 하나 밖에 남지 않게 된다”며 “가격협상력 면에서도 불리한 위치에 서는 게 불가피하다”고 말했다.

 

과점 피해 우려 현실화 될까

지난 2013년 히가시 데쓰로 도쿄일렉트론 회장(왼쪽)과 게리 디커슨 어플라이드머티리얼 사장이 토쿄 도쿄일렉트론 본사에서 합병을 발표한 후 악수하고 있다. 양사의 합병 시도는 결국 2015년 무산됐다. /사진=어플라이드머티어리얼즈
지난 2013년 히가시 데쓰로 도쿄일렉트론 회장(왼쪽)과 게리 디커슨 어플라이드머티리얼 사장이 토쿄 도쿄일렉트론 본사에서 합병을 발표한 후 악수하고 있다. 양사의 합병 시도는 결국 2015년 무산됐다. /사진=어플라이드머티어리얼즈

이 같은 우려는 지난 2013년 AMAT이 TEL과의 합병을 추진했을 때도 동일하게 제기됐다. AMAT과 TEL의 합병 시도는 비록 무산됐으나 업계에 많은 논란 거리를 던졌다.

2012년 당시 양사 매출 합계는 100억달러(약 12조13000억원)로, AMAT⋅TEL은 각각 반도체 장비 시장 1⋅3위를 기록 중이었다. 이런 두 회사가 합병할 경우 끼워팔기, 부분품 독점구매, 특허권 남용 등 독점 폐해가 우려된다며 반도체 업계는 반대 여론을 설파했다. 확산 공정만 놓고 보면, 당시 추산한 AMAT과 TEL의 시장 점유율은 67%에 달했다.

AMAT⋅TEL 합병 시도 이전에 합병한 KLA텐코가 검사 및 측정 시장의 독점력을 바탕으로 강력한 바게닝파워(Bargaining Power)를 구사하는 것을 예로 들기도 했다. 

결국 2015년 AMAT과 TEL은 각국 규제 당국으로부터 합병 승인을 얻는데 실패하면서 합병 추진 계획을 접었다. 이번 AMAT의 고쿠사이일렉트릭 인수는 단지 확산공정에 제한된 시도지만, 핵심 공정 장비인 만큼 전체 팹 투자에 끼치는 영향은 지대하다. 확산 장비는 증착⋅식각 등과 달리 이렇다할 국산 후보 업체도 없는 상황이다. 

업계 전문가는 “반도체 장비 시장에서 폭 넓은 라인업을 보유한 AMAT은 그렇잖아도 ‘갑(甲) 같은 을(乙)’이라는 얘기가 나올 정도로 협상력이 높다”며 “고쿠사이일렉트릭 인수로 삼성전자⋅SK하이닉스 등의 구매 정책에도 변화가 예상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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