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루오린 PI, 불화수소, 감광액 수출시 허가 필요
실제 엄격하게 제한할 지 미지수

일본 정부가 강제징용 배상소송 결과에 대한 보복 조치로 반도체⋅디스플레이용 필수 소재 수출에 제동을 걸었다. 지난해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신일철주금이 강제징용 피해자들에게 1억원씩을 배상하라”고 확정판결 한 이후 8개월여 만이다.

향후 일본 업체가 플루오린 폴리이미드, 고순도 불화수소, 감광액 등을 국내로 수출하기 위해서는 일본 정부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 미국이 화웨이를 제재한 것과 똑같은 방식으로 국내 첨단 산업에 타격을 가하겠다는 뜻이다.

금호석유화학 소재연구팀 연구원이 전자소재를 테스트하고 있다. /사진=금호석유화학
금호석유화학 소재연구팀 연구원이 전자소재를 테스트하고 있다. /사진=금호석유화학

3대 핵심 품목, 어디에 쓰이나 

 

일본 정부가 수출 규제키로 한 소재 중 하나인 플루오린 폴리이미드(PI)는 최근 부각된 폴더블 스마트폰용 커버윈도 소재다. 기존 PI 구조에서 수소(H)를 플루오르(F)로 치환하여 투명성을 강화한 게 특징이다. 

일반 OLED는 커버윈도로 딱딱한 유리가 사용되지만, 접었다 폈다를 반복하는 폴더블 스마트폰은 잘 휘어지는 플루오린 PI로 가장 바깥쪽을 감싸야 한다. 따라서 플루오린 PI는 잘 휘는 성질과 함께 무색 투명해야 하는데, 노란색 빛을 띄는 일반 PI와의 구분을 위해 투명(Colorless) PI로 부르기도 한다.

투명 PI의 수출규제는 단기적으로는 삼성전자에 충격을 주겠지만, 비교적 조기에 국산 제품으로 대체될 가능성이 크다. 삼성전자가 올해 초 ‘갤럭시 폴드’에 적용한 일본 스미토모화학의 투명 PI 외에도 코오롱인더스트리⋅SKC 등 국산화 된 제품이 있기 때문이다. 

특히 코오롱인더스트리의 투명 PI는 ‘세계일류소재개발(WPM)’ 국책과제를 통해 지난 2010년부터 개발해 온 재료다. 물론 양산 승인을 위해서는 삼성전자⋅디스플레이가 이들 제품을 구매해 테스트하는 과정이 별도로 필요하다. 

또 다른 수출 규제 품목인 고순도 불화수소(HF)는 반도체 식각(에칭) 공정과 함께 세정 공정에 쓰이는 재료의 원재료다. HF는 일본 스텔라케미파와 모리타화학공업이 세계 시장의 90%를 점유하고 있다. 이 때문에 일본 정부가 이번 사태를 계기로 HF 수출을 전면 금지시킨다면 국내 반도체 업계에 주는 충격을 가늠하기 어려울 정도다.

다만 HF 수급은 항상 불안정했고, 일본 정부가 이를 과거에도 전략무기화 해 온 터라 반도체 업계가 다변화를 추진해왔다는 점은 그나마 다행이다. 일본의 두 회사 외에도 중국산 HF도 시장에 풀리고 있어 반도체 업계만 놓고 보면 일본산 점유율이 60~70% 정도로 내려왔다. 다만 시장 전반적으로 수급이 중국산으로 몰리면서 HF 가격 상승은 불가피해 보인다. 

삼성전자 갤럭시 폴드. 플루오린 폴리이미드(일명 투명 PI)가 폴더블 스마트폰 커버윈도로 쓰인다. /사진=삼성전자
삼성전자 갤럭시 폴드. 플루오린 폴리이미드(일명 투명 PI)가 폴더블 스마트폰 커버윈도로 쓰인다. /사진=삼성전자

반도체⋅디스플레이 산업 전반적으로 사용되는 감광액은 노광 공정에서 회로 패턴을 새기는데 사용하는 재료다. 감광액 산업 전반적으로 국산화가 많이 진행되어 있으나 가장 최신 재료인 극자외선(EUV) 노광에 쓰이는 감광액은 국산화가 미진하다.

전체 감광액 산업으로 보면 JSR⋅도쿄오카공업(TOK)⋅다우케미칼⋅신에츠화학⋅스미토모화학⋅FFEM⋅동진쎄미켐⋅이엔에프테크놀러지 등이 포진해 있다. EUV 노광용 감광액은 일본 JSR 정도만 공급 가능하다. 

따라서 이번 조치가 100% 실행된다면 삼성전자의 EUV 라인은 타격이 불가피하다. EUV 외 기타 공정용 감광액 역시 70% 정도를 일본산에 의존하고 있는 만큼, 장기적으로 피해가 예상된다.

한 감광액 업체 관계자는 “삼성전자가 JSR에서 받아오던 EUV 감광액 중 일본 현지 재고를 7월 4일 이전에 앞당겨 받아 오기로 하는 등 재고 확보에 총력을 다하고 있다”고 말했다.

 

日 정부 규제 실현 가능할까

 

다만 일본 정부가 엄포 만큼 엄격하게 규제를 시행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수출 제한 조치가 일본 소재 업계에 즉각적인 피해를 유발한다는 이유에서다. 

실제 일본 정부는 지난해에도 HF 수출을 막아 국내 반도체 업계에 타격을 가하려 했으나 실제 실행에 옮기지는 못했다. 일본 경제계에서의 반발이 만만치 않았기 때문이다. 

수출 제한 규제가 반도체 업계의 소재 국산화 및 수급 다변화 의지를 자극한다는 점도 부담이다. 아직 양이 많지는 않지만 HF는 중국산이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고, 감광액도 동진쎄미켐⋅이엔에프테크놀러지를 적극 육성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수출 규제 기간이 늘어날수록 일본 소재 업계가 받는 타격 역시 심대할 것”이라며 “실제 규제 효과가 나오기 전에 적당히 화해하는 선에서 사태가 마무리 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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