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지 인더스트리] 시스템반도체 육성정책의 허실...정책 톺아보기
[이지 인더스트리] 시스템반도체 육성정책의 허실...정책 톺아보기
  • KIPOST
  • 승인 2019.06.25 16: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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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연 KIPOST 기자

시스템반도체 육성계획, "그래서 뭐가 바뀐다고요?"

얼마 전 정부에서 시스템 반도체 육성 계획을 발표했었죠. 그 바로 전에는 삼성전자가 향후 10년간 시스템반도체에 133조원을 투자하겠다고 했고요. 그런데 정작 업계에서는 "그래서 뭐가 바뀌느냐"는 반응이 나옵니다. 현실을 몰라도 너무 모른다는 거죠.

이야기를 시작하기 전에, 왜 그렇게 다들 '시스템 반도체, 시스템 반도체' 하는지 한 번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시스템 반도체가 뭐길래

시스템반도체는 메모리반도체, 즉 D램과 낸드플래시를 제외한 나머지 모든 종류의 반도체를 뜻합니다.

시스템 반도체 중에서도 두뇌 역할을 하는, 그러니까 온갖 데이터를 계산하고 처리하는 작업을 하는 걸 디지털 반도체라고 부르고, 아날로그 신호를 디지털로, 혹은 디지털 신호를 아날로그로 바꿔주는 일을 하는 걸 아날로그 반도체라고 합니다.

시스템 반도체 시장은 메모리 반도체 시장보다 큽니다. 전체 반도체 시장에서 35%를 메모리 반도체가 차지한다면, 나머지 65%는 시스템 반도체가 차지하죠. 시장이 클 수밖에 없습니다. 메모리 반도체는 기본적으로 종류가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반면, 시스템 반도체는 나머지 모~든 종류의 반도체를 통칭합니다.

단일 종류로만 생각해보자면, 메모리만큼 시장 규모가 큰 반도체를 찾기도 어려운데요. 왜 시스템반도체를 키워야 하냐고요?

자율주행차를 스스로 달리게 하는 것도, 인공지능이 스스로 생각하게 하는 것도 반도체거든요. 스마트폰에 메모리 수 개와 수십가지의 시스템반도체가 들어가 있는 것처럼, 자율주행차 속에도 온갖 종류의 시스템반도체가 들어가고, 인공지능도 데이터 수집부터 처리까지 모두 반도체가 하게 됩니다

메모리와 비교하면 상대적으로 국내 시스템반도체 시장은 빈약합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우리나라의 시스템반도체 경쟁력이 없는 건 절대로! 절대로 아닙니다.

시스템반도체 생태계는 칩을 설계하는 팹리스와 설계한 칩을 생산할 수 있게 바꿔주는 디자인하우스, 그리고 칩을 만들어주는 파운드리로 나뉩니다. 이 셋 중에서 파운드리, 그리고 디지털 반도체 분야 팹리스로는 우리나라도 강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삼성전자는 TSMC와 파운드리 업계 첨단 공정의 양대 산맥으로 꼽힙니다. 스마트폰에 들어가는 AP, 모뎀도 설계하고 있죠. CCTV용 이미지센서의 트렌드를 CCD에서 CIS로 바꿔놓은 픽셀플러스도 우리나라 업체고, 현대기아차의 전체 인포테인먼트 AP의 80%를 공급하는 텔레칩스도 있습니다. 세계 자동초점 드라이버 IC 시장 1위 동운아나텍도 국내 기업이고요 .

한국 시스템 반도체 경쟁력 떨어지는 이유

그런데 왜, 우리나라 시스템 반도체 경쟁력이 다른 국가보다 떨어진다고 하는 걸까요? 그럴만한 환경이 안되기 때문입니다.

업계가 지적하는 문제는 크게 세 가지 입니다. 인력, 제품, 그리고 기술이죠.

먼저 인력입니다. 시스템반도체 업체들, 특히 팹리스와 디자인하우스에게는 인력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기계로 반도체를 만들 것도 아니고, 사람이 설계만 하면 되니까요. 하지만 1년에 배출되는 시스템 반도체 석박사 인력은 고작 20여명에 그칩니다. 삼성전자에 가고, SK하이닉스에 가고, LG 계열사인 실리콘웍스에 가고, 현대에 가고 남은 사람은 몇명이나 될까요? 이렇게 애초에 뽑을 만한 우수 인력도 적은데, 애써 뽑아서 키워놓으면 대기업에서 또 데려갑니다.

실제로 한 팹리스 업체는 대기업과 프로젝트를 진행하다가, 해당 프로젝트를 진행하던 핵심 인력을 모두 대기업에 빼앗기고 말았습니다. 전 직원이 20여명이었는데 그 중 6명을 데려갔어요. 3분의 1이죠. 그러는 바람에 진행하고 있던 다른 프로젝트들도 죄다 흐지부지되버렸고, 이를 회복하는 데 3년이 넘게 걸렸습니다. 문제는 이렇게 인력이 유출되도, 동종업계 전직금지 가처분소송을 못건다는 거에요. 왜? 잠재적 고객사니까. 그리고 대기업에게 맞선다는 게 쉬운 문제도 아니구요.

두 번째는 기술입니다. 인력도 부족한데, 그나마 갖춘 기술력도 대기업이 슬쩍 보고 가져가기 일쑤입니다. 가끔 팹리스 업체 대표님들은 대기업으로부터 '초청 강연'을 부탁받는데요. 대가로 USB 하나 주고 마는 그 강연에서 자신의 기술을 노출했다가, 얼마 후에 해당 대기업이 아이디어의 상당 부분이 유사한 반도체를 출시해 골머리를 앓았던 걸 본 게 한 두번이 아닙니다. 인력을 빼가서 해당 제품을 개발하는 일도 빈번하게 벌어지고요.

세 번째는 제품입니다. 팹리스 업계에는 1000억원의 장벽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단일 종류 반도체를 설계하는 기업의 연매출이 1000억원이 넘어가면 대기업이라는 막강한 경쟁자가 시장에 진입한다는 얘깁니다. 실제 20여년 전만 해도 국내 팹리스 20여개사가 상장할 정도로 시스템 반도체 업황이 괜찮았지만, 대기업이 반도체를 내재화하기 시작하면서 타격을 받아 이 지경에 이르렀죠. 여기에 중국 팹리스 업체들도 정부 보조금을 등에 업고 가격을 확 낮추면서 들어옵니다.

다시 말해서 대기업이 하지 않을 만한 제품을 고르고, 중국 등 중화권 업체들이 쉽게 할 수 없는 제품을 골라야 한다는 얘깁니다. 앞서 말씀드렸듯 시스템 반도체는 종류만 수만가지에 달하고 각 종마다 이미 하고 있는 업체들이 있는데, 이들을 넘어서기가 과연 쉬운 일일까요?

정부 시스템반도체 육성 계획, 생태계 문제점 빗겨나간 정책 나열

문제는 이같은 현실이 정부가 발표한 시스템 반도체 육성계획에 하나도 반영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발표 직후 팹리스 업계의 반응이 차가웠던 것도 이 때문이죠. 실제 정부가 발표한 전략을 살펴볼까요? 비전이랑 목표는 모두 좋습니다. 추진 과제는 팹리스, 파운드리, 생태계, 인력, R&D 다섯 가지로 나뉘네요.

첫번째 추진과제죠. 팹리스를 대상으로 수요를 창출해주고, 성장단계별 지원을 하겠다는 내용입니다. 수요는 5대 전략 분야를 중심으로 연계 과제를 만들고, 공공 수요를 발굴해서 시장을 만들고, 5G 5세대 이동통신이죠 관련 핵심 산업 서비스와 국내 시스템반도체 기업을 연계하겠다는 겁니다. 성장 지원으로는 팹리스 원스톱 지원 체계를 구축하고, 전용 펀드나 사업화, R&D 등 수요별로 맞춤 지원하겠다고 했습니다.

하나하나 살펴볼까요. 먼저 수요입니다. 5대 전략분야를 중심으로 수요 연계를 강화하겠다고 했는데요. 이 수요를 창출하는 협력채널이 정부 발표 전날 조성이 됐어요. 수요 기업, 공급 기업, 연구기관 등 25개 기관이 모였는데 문제는 이 중 반도체 업체는 7곳밖에 안된다는 겁니다. 나머지 반도체 업체들은 어떻게 해야하죠?

공공 수요 발굴 및 시장 창출은 레퍼런스, 납품 실적을 쌓기 좋을 것 같습니다. 5G 핵심 산업 서비스도 말은 좋은데, 국내엔 애초에 이동통신용 반도체를 만드는 곳이 거의 없어요. 모뎀은 삼성전자가 만들고 있고, 나머지 업체들은 거의 영세한 규모 업체들인데 뭘 어떤 식으로 연계를 하겠다는 건지 모르겠습니다.

성장 지원도 봅시다. 팹리스 원스톱 지원체계를 구축하겠다고 했어요. 이 안에는 스타트업에게 사무실 빌려주는 것부터 MPW, 멀티프로젝트웨이퍼라고 하죠. 물량이 적어도 반도체를 생산할 수 있게 하나의 웨이퍼에 여러 반도체를 찍는 개념입니다. MPW와 설계에 필요한 EDA툴을 지원하고, 해외 진출도 돕겠다는데 이건 이미 하고 있는 겁니다. 그나마 달라진 건 IP 플랫폼을 만든다는 것 정도가 되겠네요.

전용 펀드도 만들겠다고 했네요. 전용 펀드 좋습니다. 문제는 운영을 민간 밴처캐피탈들이 하면서 단기간에 실적을 낼 수 있는 업체들만 지원한다는 겁니다. 실제 반도체 성장 펀드라는 게 있는데, 정부 주도로 민간이 조성했고, 민간 VC에서 운용합니다. 제가 아는 어떤 기업 대표님이 성장펀드를 받으려고 VC 관계자를 찾아가서 발표를 했는데 끝나고 하는 첫 질문이 "그래서 1년 안에 실적을 낼 수 있나요" 였답니다. 반도체는 아이디어부터 설계, 시제작까지 보통 2년이 걸립니다. 1년 안에 실적을 낼 수 있으면 VC를 찾아가지 정부 지원 펀드의 문을 두드렸을까요. 이번 펀드도 그래서 어떻게, 누가 운용할 것이냐가 관건으로 보입니다. R&D 과제 기업 대상으로 사업화를 지원한다는 건 좋은 아이디어인 것 같습니다. 대학과 연구소 인력을 파견보내는 것도 좋고요.

두 번째 추진과제는 파운드리입니다. 시설 투자에 대한 세제, 금융 지원을 하겠다는 건데요. 일단 첫번째, 중견 기업을 대상으로 시설투자 비를 지원하겠다는 내용인데 매그나칩처럼 외국 기업을 제외하고 우리나라에 중견 파운드리 기업이 어디가 있나요?... DB하이텍 말고 또 있나요? 파운드리 시설투자 세액공제도 누구 좋으라고 하는 건가요? SK하이닉스는 파운드리를 중국으로 보낸다고 발표했죠. 당장 시설투자를 할 건 삼성뿐인데, 너무 티나지 않나요?

세 번째 추진과제는 상생협력입니다. 생태계 조성에 필수적이죠. 그런데 과제가... 팹리스와 파운드리 상생협력을 위해 파운드리가 문을 열겠다는 게 첫 번째 과제입니다. 이건요. 정부가 열라고 해서 여는 게 아니라, 파운드리한테는 팹리스가 고객사라서 여는 겁니다. 파운드리에서 무슨 공정을 제공하는지를 알아야 고를 거 아녜요. 디자인하우스 육성은 소프트웨어, IP만 지원한다는 게 너무 아쉽습니다. 삼성은 베트남에 디자인하우스를 세우게 하고, 자체적으로 디자인서비스를 강화하고 있는데 국내 디자인하우스들은 어떻게 먹고 사나요. 부디 민관 합동 상생발전위원회에서 이 문제를 짚고 넘어갔으면 합니다.

네 번째 추진과제, 가장 중요한 인력 양성입니다. 앞서 말씀드렸듯, 시스템 반도체, 특히 설계에는 인력이 핵심입니다. 인력이 없으면 아무것도 못해요. 그런데 이 와중에 대기업과 손잡고 반도체 특화 계약학과를 더 만들겠다는데요. 반도체 특화 계약학과는 졸업 후 무조건 해당 기업에 가는 조건으로 대기업으로부터 등록금 등을 지원받는데요. 업계에서는 안 그래도 사람이 없는데, 중소기업으로 올 사람까지 죄다 흡수하는 것 아니냐고 우려합니다. 석박사 인력 양성은 좋습니다. 반도체 기능이 고도화되면서 소자부터 설계, 제조를 모두 아는 인재가 필요해졌거든요. 대학 연구소 인프라 확충, 업그레이드도 좋습니다. 반도체 업체들과는 비교할 수 없겠지만, 좀 더 나은 환경에서 공부한다면 실무에 들어왔을 때도 빨리 적응할 수 있겠죠.

마지막. 연구개발입니다. 먼저 정부는 AI 등 차세대 반도체 개발에만 1조원을 투입할 것이라고 발표했는데요. 사실 그동안 시스템 반도체 업계를 대상으로 지원했던 게 대부분 R&D 형태였는데 거의 성공 사례가 없죠? 업계에서는 R&D 과제비로 먹고 산다는 자괴감 섞인 이야기도 합니다. 애초에 우수 인력도 없는데, 어떻게 국가에서 '차세대'라고 선정한 미래 R&D를 수행할 수 있을까요? 어떤 팹리스 업체 대표님은 인력 양성에 1조원 투입하는 게 낫다고 하시더라고요. 그리고 전력 반도체 시장은 성장 가능성이 매우 높지만, 진입 장벽 또한 높습니다. 세계적인 기업들이 이미 손 안에 쥐고 있는 시장인데, 어떤 애플리케이션을 겨냥하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핵심 기술의 해외유출 방지 시스템을 정비하기 전에, 한국 내에서 인력을 빼앗기고 기술을 빼앗기는 문제부터 해결했으면 좋겠네요.

업계의 싸늘한 반응을 본 정부는 최근 부랴부랴 업종별로 간담회를 열고 애로사항을 수집하고 있다는데요. 부디 세부과제로 나올 때는 좀 더 보완된 형태이기를 바랍니다. 현실을 알아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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