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IoT, 오픈소스 활용한 코어 아키텍처 적용 용이
레퍼런스 늘면서 신뢰도 증가

반도체 업계가 새로운 코어 아키텍처를 개발하려는 시도를 하지 않았던 건 아니다.

국내만 해도 정부가 ‘국산 중앙처리장치(CPU) 코어 상용화’ 사업을 진행했지만 결국 프로젝트가 무산됐다. 아두이노⋅라즈베리파이 등 다른 프로세서도 마찬가지의 길을 밟고 있다.

하지만 최근 들어 오픈소스 명령어 세트 아키텍처(ISA)를 활용, 자체 코어 아키텍처를 만들려는 움직임이 다시 활발해졌다. 인공지능(AI)⋅사물인터넷(IoT) 단말 등 새로운 응용처가 대거 등장하면서다.

AI⋅IoT 분야는 오픈소스 ISA를 활용한 자체 코어 아키텍처를 만들려는 움직임이 활발하다. /사진=pixabay
AI⋅IoT 분야는 오픈소스 ISA를 활용한 자체 코어 아키텍처를 만들려는 움직임이 활발하다. /사진=pixabay

조명현 사이파이브(SiFive) 한국 지사장은 “AI반도체는 굳이 고가의 ISA를 사용할 필요가 없거나 사용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며 “오픈 소스 ISA의 생태계가 커지고 납품 실적(Reference)이 쌓이기 시작하면서 이 영역을 중심으로 채택률이 높아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범용 반도체(ASSP) 없는 AI, 오픈 소스 아키텍처로 기능 최적화

 

AI는 적용하고자 하는 기기와 구현하려고 하는 기능에 따라 데이터를 모델링하는 알고리즘이 다르다.

예를 들어서 사람의 말을 알아듣고 지시된 기능을 수행해야하는 음성인식 스피커에는 자연어 이해(NLU) 기법을 기반으로 기계학습(ML)이나 딥러닝(DL) 알고리즘이 필요하다. 전방의 사물을 인식⋅분류하는 자동차에는 비전 인식 기반 알고리즘이 들어가야 한다.

이를 구현하는 반도체도 마찬가지로 구조가 다르다. 예컨대 차량용 비전 반도체는 카메라부터 라이다⋅레이더⋅초음파까지 여러 센서를 결합해 데이터를 계산해야해 그만큼 논리 회로가 복잡하다. 반면 CCTV용 비전 반도체는 카메라에서 들어온 데이터만 처리하면 돼 상대적으로 구조가 간단하고 칩 크기가 작다.

이같은 특성 탓에 AI 반도체는 어느 업체나 사양을 바꾸지 않고 쓸 수 있는 범용 반도체(ASSP)가 아닌 각 업체가 맞춤형으로 설계한 전용 반도체(ASIC) 형태다. 구글도 텐서프로세싱유닛(TPU)을 각 세대별⋅적용처별로 구분해 내놓았다.

AI 알고리즘의 모델링 기법과 용처./자료=한국직업능력개발원
AI 알고리즘의 모델링 기법과 용처./자료=한국직업능력개발원

여기에 AI 반도체에서 중앙처리장치(CPU)는 극히 제한적인 역할을 수행해 AI 알고리즘의 성능에 큰 영향을 주지 않는다. AI 알고리즘을 구동하는 회로 블럭은 한 번에 많은 양의 데이터를 처리할 수 있는 병렬 처리 구조로, 각 업체들이 자체 개발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때문에 인텔이나 Arm이 제공하는 값비싼 코어 아키텍처를 라이선스할 필요가 없다. 가져다 쓴다 해도 AI에 필요하지 않은 기능 블록(Block)이 많아 오히려 AI 알고리즘의 성능이 떨어지거나 전력소모량이 줄어드는 경우도 부지기수다. 여기에 AI 알고리즘을 제대로 지원하지 않는 경우도 더러 있다.

백준호 퓨리오사AI 대표는 “AI 알고리즘의 종류만큼 AI 반도체도 여러 구조를 갖고 있는데, Arm이나 인텔이 제공하는 아키텍처를 쓰면 정해진 틀 안에서 알고리즘을 개발해야하는 문제가 있다”며 “오픈 소스 아키텍처를 쓰면 설계 자유도가 높아지고 무엇보다 원하는 기능만 넣은 맞춤형 반도체 개발에 용이하다”고 말했다.
 

IoT 엣지(Edge), 오픈소스 ISA로 가격 경쟁력 확보

 

그동안 IoT가 좀처럼 일상 생활에 침투되지 못하는 이유 중 하나는 높은 가격이다. 냉장고⋅TV 등 대형 가전만 예로 들어도 ‘스마트’ 기능이 있는 가전은 해당 기능이 없는 제품보다 최소 수십만원 비싸다.

IoT 기능을 구현하려면 여러 반도체가 필요한데, 특히 데이터를 처리하는 고사양의 마이크로처리장치(MCU)나 애플리케이션프로세서(AP)가 중요하다. 현재 MCU와 AP의 마이크로아키텍처는 주로 Arm의 코어텍스를 활용하는데, 라이선스 및 로열티 비용이 만만치 않다.

업계 관계자는 “아키텍처 라이선스 및 로열티에만 최소 수억원이 소요된다”라며 “개발비에 비용이 반영되니 최종 소비자 가격이 비쌀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여기에 기존 아키텍처를 그대로 활용하거나 Arm, 인텔로부터 ISA를 라이선스해 아키텍처를 바꾼다 해도 설계 결과물을 아키텍처 공급 업체에 공개(grant-back)하거나 개발 과정에서 정보가 유출될 가능성이 있고, 군더더기가 붙어 전력소모량이 커지는 문제도 있다.

오픈소스 ISA는 라이선스 및 로열티 비용을 지불할 필요도, 설계한 결과물의 구조를 외부에 공개할 필요도 없다. 원하는 기능 블록을 집어넣기만 하면 돼 전력소모량을 줄이는 것도 용이하다. 덕분에 IoT 단말용 기기에 들어가는 반도체를 오픈소스 ISA로 만드는 업체들이 늘어나고 있다.

일례로 샤오미의 반도체 설계 자회사 후아미(Huami)는 스마트워치 및 피트니스 웨어러블 기기용 프로세서를 설계할 때 오픈소스 ISA인 RISC-V 기반 ‘SiFive E31’ 프로세서 코어 설계자산(IP)을 활용했고, 솔리드스테이트드라이브(SSD) 컨트롤러를 개발하는 파두(FADU) 또한 RISC-V로 반도체를 설계한다.

MCU 아키텍처 중 하나인 ‘Arm 코어텍스-M0’의 라이선스 비용과 로열티 비용을 합치면 최소 37만 달러(약 4억4000만원)다.
MCU 아키텍처 중 하나인 ‘Arm 코어텍스-M0’의 라이선스 비용과 로열티 비용을 합치면 최소 37만 달러(약 4억4000만원)다.

커지는 생태계, 쌓이는 레퍼런스… 오픈소스 한계 해결

 

이전 나온 코어들과 달리 IP 및 소프트웨어(SW) 생태계가 빠르게 확장되고 있고, 납품 실적이 쌓이고 있어 오픈소스 ISA에 대한 신뢰성도 높아지고 있다.

반도체는 코어 프로세서만 있다고 해서 만들 수 있는 게 아니다. 코어 프로세서와 다른 부품을 연결하는 인터페이스, 수동 부품 등 무수히 많은 주변장치가 필요하고, 다양한 소프트웨어 도구를 지원해야한다.

지금까지 출시된 다른 코어 프로세서가 별다른 성과를 내지 못한 것도 이 생태계를 넓히지 못해서다.

하지만 오픈소스 ISA는 이와 다르게 생태계 자체가 열린 구조다. 개발자들의 집단 지성을 통해 개선을 거듭한 ‘리눅스(Linux)’처럼 오픈소스 ISA도 여러 업체들의 참여로 생태계가 빠르게 커지고 있다.

RISC-V 파운데이션(RISC-V Foundation)에는 설계자산(IP) 업체부터 코어 설계 업체까지 다양한 업체들이 참여하고 있고, 대부분은 소프트웨어(SW)로 리소스를 공개하고 있다. 블록 단위로 원하는 기능을 넣기만 하면 되는데, 다만 ‘RISC-V’라는 상표는 RISC-V 파운데이션에 가입해야 달 수 있다.

납품 실적도 하나 둘 늘어나고 있다.

엔비디아는 GPU 내 임베디드 컨트롤러를 RISC-V로 설계하고 있고, 웨스턴디지털(WD)은 내년부터 일부 디스크 드라이브에서 RISC-V 컨트롤러를 사용하기로 했다. 유럽 프로세서 이니셔티브(European Processor Initiative)에서는 RISC-V 기반 슈퍼컴퓨터용 하드웨어 가속기 아키텍처를 만들 계획이다.

팹리스 업계 관계자는 “오픈소스 ISA의 가장 큰 문제점은 신뢰성이 없다는 것이었지만 지금은 이같은 문제가 해결된 상태”라며 “칩을 개발할 때 코어 IP로 오픈소스 ISA를 검토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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