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율주행·전력반도체·인공지능 중심으로 사업 확장·재편

지난 상반기 반도체 업계에는 굵직한 인수합병(M&A)이 이어졌다.

자율주행, 인공지능(AI), 5세대(5G) 이동통신 등 태동하기 시작한 미래 시장은 모바일에 버금가는 모멘텀이 될 것이라는 데에는 이견이 없다. 여기에 빠르게 성장하던 시장이 소강 국면에 접어들고 대외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반도체 기업 가치에 거품이 빠지고 있다.

이에 업계는 인수합병(M&A)으로 사업을 재정비, 미래 시장을 선점할 준비를 하고 있다.

 

상반기 M&A 규모, 작년 1년치보다 컸다

반도체 업계 M&A 규모. 2016년 수치가 절반으로 줄어든 건 퀄컴의 NXP반도체 인수 계획이 무산됐기 때문이다./IC인사이츠
반도체 업계 M&A 규모. 2016년 수치가 절반으로 줄어든 건 퀄컴의 NXP반도체 인수 계획이 무산됐기 때문이다./IC인사이츠

올해 1월부터 4일까지 반도체 업계가 발표한 M&A건의 거래대금은 총 309억 6050만달러(약 36조4560억원)로, 지난해 1년간의 총 M&A 규모(232억달러)를 가뿐히 제쳤다. 인수 대금이 밝혀지지 않은 건까지 합치면 규모는 더 커진다.

업계의 M&A 규모는 지난 2015년 1073억달러(약 126조6462억원)로 급증했고, 이후 지난해까지 꾸준히 줄어들었다. 상반기의 추세가 이어진다면 올해 M&A 규모는 반도체 슈퍼사이클이 시작되기 직전인 지난 2016년 수준에 달할 것으로 보인다.

 

커넥티비티카 시장이 왔다… 車 반도체 업계 앞다퉈 기술 확보

2019년 상반기 반도체 업계 M&A 사례 및 규모./KIPOST 정리
2019년 상반기 반도체 업계 M&A 사례 및 규모./KIPOST 정리

단일 M&A 중 가장 규모가 큰 건은 인피니언의 사이프레스 인수(100억달러)였다. 인피니언은 사이프레스를 흡수해 세계 종합반도체(IDM) 업계 15위에서 8위로 올라섰다.

인피니언이 사이프레스를 인수한 가장 큰 이유는 차량용 반도체 솔루션을 확장하기 위해서다.

사이프레스는 와이파이-블루투스 콤보 시스템온칩(SoC), USB 타입C, 클러스터용 마이크로제어장치(MCU), 터치칩, NOR메모리 등 여러 차량용 반도체에서 시장 점유율 1위를 기록하고 있다. 지난달에는 특히 아퀀티아(Aquantia)를 인수, 차량 내 CAN 통신을 대체할 이더넷(Ethernet) 솔루션까지 확보한 상황이다.

이 중에서도 인피니언이 탐낸 건 사이프레스의 차량용 커넥티비티 솔루션들이다. 인피니언은 지난 2010년 인텔에 무선 통신 사업부를 매각, 사업에 손을 뗐다.

하지만 자동차에 커넥티비티 기능이 기본으로 적용되기 시작하면서 커넥티비티 솔루션에 대한 수요가 늘어나기 시작했다. 자율주행 시대로 가면 중요성도 커지는만큼 ‘차량용 반도체’에 방점을 찍은 인피니언의 입장에서는 탐이 나는 기술일 수밖에 없다.

NXP반도체가 마벨의 와이파이 및 커넥티비티 사업부를 인수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NXP반도체는 프리스케일 인수로 이동통신(Cellular) 관련 설계자산(IP)은 확보했지만 좀처럼 사업 영역을 넓히지 못했다. 근거리전용무선통신(DSRC) 기반 V2X 반도체도 여러 업체의 IP를 조합해 만든 것이라고 업계 관계자는 설명한다.

업계 관계자는 “NXP반도체가 작년 구조조정에 돌입하면서 프리스케일의 모뎀 사업부를 재매각하지 않겠느냐는 이야기까지 돌았다”며 “마벨 인수로 커넥티비티 IP를 확장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공급 부족’ 전력 반도체… 생산량 늘리고 제조 기술 확보

전체 반도체 시장의 성장세는 정체됐지만 전력 반도체는 여전히 공급 부족 현상을 겪고 있다. 오히려 작년보다 수요가 늘었고, 업계는 이같은 추세가 계속될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다.

전력 반도체는 미래 모빌리티(Mobility)의 핵심 기술이다. 하이브리드(HEV)나 플러그인하이브리드(PHEV) 전기차는 내연 기관 자동차보다 19배 많은 전력 반도체를 필요로 한다. 5G 네트워크 인프라 구축이 시작되고 고성능컴퓨팅(HPC) 서버 시장이 커지는 것도 전력 반도체 수요 증가의 원인 중 하나다.

상반기 전력 반도체 업체들은 수요에 대응해 제조 기술을 확보하거나 생산량을 늘렸다.

ST마이크로는 실리콘카바이드(SiC) 웨이퍼를 안정적으로 조달하기 위해 노스텔(Norstel)의 지분 55%를 취득, 최대 주주로 올라섰다. 1억3750만달러(약 1621억원) 규모의 이 계약에는 특정 조건에 따라 나머지 45%를 인수할 수있는 옵션도 포함됐다.

프랑스 웨이퍼 업체 소이텍(Soitec)은 에피갠(EpiGaN)을 인수, 질화갈륨(GaN) 웨이퍼 제조 기술을 확보했다. SiC와 GaN은 고전압·고열에 강하고 전력 변환 효율성이 높은 와이드밴드갭(WBG) 소재로, 자동차와 네트워크를 중심으로 수요가 커지고 있다.

온세미컨덕터는 글로벌파운드리(GF)의 뉴욕 300㎜ 생산라인(Fab)을 인수, 인피니언, ST마이크로에 이어 3번째로 300㎜ 전력 반도체 팹을 보유한 업체가 됐다. 회사는 이 곳에서 전력 금속산화물반도체 전계효과트랜지스터(MOSFET) 및 절연 게이트 양극성 트랜지스터(IGBT)를 생산할 계획이다.

업계 관계자는 “업계가 제조 능력을 늘리고 있지만, 전부 감안해도 수요를 감당하지 못할 수준”이라며 “향후 3~4년간은 이같은 추세가 계속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AI 사업 발판 닦는 반도체 업체

‘AI’를 전면에 내세운 엔비디아는 지난 5월 멜라녹스(Mellanox)를 69억달러(약 8조1351억원)에 인수했다.

AI의 성능을 높이기 위해서는 이 데이터를 연산하는 그래픽처리장치(GPU)의 성능도 중요하지만, 각 부품과 서버 사이를 연결해 대용량의 데이터를 전송해주는 인터커넥트 기술도 개선돼야한다.

멜라녹스는 서버·스토리지용 인피니밴드 인터커넥트 솔루션과 데이터센터용 이더넷 스위칭 솔루션을 갖고 있는데 특히 HPC 시장에서는 독보적인 점유율을 자랑한다.

마벨이 글로벌파운드리의 주문형 반도체(ASIC) 아베라세미컨덕터(Avera semiconductor)를 인수한 것도 궁극적으로는 AI 등 고성능 반도체 시장을 겨냥한 것이라고 업계는 설명했다.

아베라세미컨덕터는 IBM의 ASIC 사업부에서 분사한 업체로, 지난해 글로벌파운드리의 품에 안겼지만 올해 마벨에 재매각됐다.

AI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현재 ASIC의 수요는 AI용 반도체 등 고성능 맞춤형 반도체 개발에 집중돼있다”며 “아베라는 글로벌파운드리와 긴밀히 협력, 차세대 데이터센터용 반도체 프로젝트들을 진행 중”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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