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반입 규모 '싱글 패스'
규격도 가장 낮은 단계

대만 폭스콘이 미국 위스콘신주에 짓기로 했던 디스플레이 공장의 규모와 스펙이 갈수록 후퇴하고 있다. 당초 10.5세대(2940㎜ X 3370㎜)급 TV용 생산 라인으로 잡혔던 계획이 이제는 최소한의 ‘성의’만 보여주는 수준까지 재차 축소됐다.

처음부터 투자 타당성이 결여됐던데다, ‘리쇼어링(reshoring)’ 정책의 강력한 추진체였던 트럼프 대통령의 재선 가능성마저 점차 낮아지고 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폭스콘 중국 충칭 공장. /사진=폭스콘
폭스콘 중국 충칭 공장. /사진=폭스콘

폭스콘 a-Si LCD 투자하기로, 규모도 최소화

 

폭스콘은 최근 장비 업체들과 6세대(1500㎜ X 1850㎜) 비정질실리콘(a-Si) LCD 생산 라인 투자 방안을 사실상 확정했다. 디스플레이 품질 규격 중 가장 낮은 단계로 꼽히는 a-Si는 중소형 디스플레이 분야서는 신규로 지어지는 라인이 없을 정도로 오래된 기술이다. a-Si로 만든 LCD는 피처폰이나 보급형 LCD TV 정도에 사용된다.

a-Si LCD는 디스플레이를 구동하는 박막트랜지스터(TFT)의 활성층(액티브층)이 a-Si로 이루어진 LCD다.

디스플레이 화질은 이 활성층 소재의 전자이동도에 따라 좌우된다. 폭스콘이 위스콘신주에 투자할 a-Si의 전자이동도는 0.5~1㎝²/Vs다. 이 정도의 전자이동도를 가진 TFT는 보급형 품질의 디스플레이 생산만 가능하다.

a-Si TFT의 단면도. 활성층이 a-Si로 되어 있어 전자이동도가 낮다. /자료=LG디스플레이 블로그
a-Si TFT의 단면도. 활성층이 a-Si로 되어 있어 전자이동도가 낮다. /자료=LG디스플레이 블로그

최신 스마트폰에 사용하는 저온폴리실리콘(LTPS) TFT의 전자이동도는 a-Si 대비 100배 빠른 100㎝²/Vs 안팎이다. LG디스플레이가 OLED TV 생산에 적용하는 옥사이드 TFT의 경우, 전자이동도가 10㎝²/Vs 정도다. 역시 a-Si와 비교하면 10배 빠르다.

품질 규격 뿐만 아니라 투자 규모도 최소화한다. 한 글로벌 장비 업체 대표는 “폭스콘이 일단 내년 상반기 중 한 대씩의 장비만을 위스콘신으로 반입키로 했다”며 “이를 통해 싱글 패스(Single Path) 방식의 생산을 시작할 전망”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장비 업체 관계자도 “폭스콘의 목표는 2020년 연말 미국 대선 전에 일부나마 생산품이 나와주는 것”이라며 “대규모 투자 계획은 아직 없다”고 말했다. 사실상 파일럿 생산라인에 가까운 투자만 집행하겠다는 뜻이다.

지난 2017년 '플라잉 이글' 프로젝트 발표 후 백악관에 초청 받은 궈타이밍 폭스콘 회장(사진 제일 오른쪽). /사진=백악관
지난 2017년 '플라잉 이글' 프로젝트 발표 후 백악관에 초청 받은 궈타이밍 폭스콘 회장(사진 제일 오른쪽). /사진=백악관

플라잉 이글? 추락하는 독수리

 

폭스콘의 이 같은 계획은 당초 ‘플라잉 이글(Flying Eagle)’ 프로젝트로 명명하며 투자 비전을 내놨을때와 비교하면 대폭 축소된 것이다. 지난 2017년 폭스콘은 100억달러(약 11조8300억원)를 투자해 TV용 LCD 공장을 짓겠다던 계획을 공개했다. 중국 디스플레이 업체들이  자국 내에 짓고 있는 10.5세대급 LCD 공장을 미국 심장부에 짓겠다는 원대한 비전이었다.

플라잉 이글 프로젝트는 해외로 나가있는 제조업을 국내로 다시 불러들이려는 트럼프 행정부의 리쇼어링 정책 지원을 받으면서 탄력을 받았다.

그러나 투자 발표 후 실행 단계에서 애초의 청사진이 지속적으로 축소됐다. 지난해 10.5세대급 LCD 생산 라인 투자 방안이 6세대급으로 후퇴됐고, 이번에는 a-Si 투자로 격하됐다. 처음 10.5세대에서 6세대로 다운그레이드 할 때만 해도 태블릿PC 시장까지 염두에 두기 위해 LTPS LCD 투자를 예상했다.

폭스콘이 a-Si 투자에 그친다는 것은 태블릿PC 시장은 접고, 자동차용 디스플레이 생산에 집중하겠다는 뜻이다.

폭스콘이 투자 발표 당시부터 시장성을 감안하지 않고 무리하게 비전을 발표했다는 관측도 있다. 미국 중부 내륙지역에 위치한 위스콘신은 TV나 IT 세트 산업이 전무하다. 그나마 인근 디트로이트의 자동차 공장에 자동차용 디스플레이를 공급하는 게 가장 현실적이다.

미국 중부 내륙에 위치한 위스콘신주. 세트 공장이 많은 멕시코와의 거리도 멀다. /자료=구글지도
미국 중부 내륙에 위치한 위스콘신주. 세트 공장이 많은 멕시코와의 거리도 멀다. /자료=구글지도

최근에는 리쇼어링 정책을 강력하게 밀어붙였던 트럼프 대통령의 재선 가능성이 낮아지면서 폭스콘의 투자 당위성도 떨어지고 있다. 뮬러 특검 보고서 이슈에 휘말린 이후 트럼프 대통령의 지지도는 30%대 중반에서 40%를 오간다. 내년 11월 열릴 대선에서 재선을 장담할 수 있는 지지도는 결코 아니다.

업계 관계자는 “트럼프 대통령 임기 1년차에 발표됐던 폭스콘의 투자 계획은 러시아 스캔들 등 트럼프 대통령이 공격 받을때 마다 축소되는 모양새”라며 “만약 재선되지 않을 경우, 향후 양산라인 투자는 백지화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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