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스템반도체 육성 정책, 바뀐 건 없다… 혜택은 대기업만
시스템반도체 육성 정책, 바뀐 건 없다… 혜택은 대기업만
  • 김주연 기자
  • 승인 2019.05.02 07: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인력 육성부터 대기업 위주… 생태계 조성에는 숟가락만 얹어
▲성윤모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시스템반도체 비전과 전략에 대해 발표하고 있다./산업부
▲성윤모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시스템반도체 비전과 전략에 대해 발표하고 있다./산업부

정부가 2030년 한국을 종합 반도체 강국으로 만들겠다는 목표로 시스템반도체 육성 정책을 발표했다. 지난 15년간 했던 지원보다 규모도 커졌고, 내용도 다르다지만 사실상 변한 건 없다. 오히려 혜택을 보는 건 삼성전자다.

 

인력 육성 정책부터 대기업 위주

 

▲산업부가 발표한 시스템반도체 육성 정책./산업부, KIPOST 정리
▲산업부가 발표한 시스템반도체 육성 정책./산업부, KIPOST 정리

시스템반도체 육성 정책에서 가장 큰 수혜를 받아야 하는 건 팹리스, 설계자산(IP) 업체다. 국내 시스템반도체 생태계는 제조(파운드리)가 설계(팹리스, IP 업체)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큰 기형적 구조이기 때문이다.

이에 항상 정부의 시스템반도체 육성 정책은 팹리스 위주였지만 실효성은 없었다.

이전 시스템IC2010(`98~`11), 시스템IC2015(`11~`16) 정책은 R&D에 초점을 맞췄지만, 수요 기업을 억지로 찾아 넣는 바람에 업계의 매출로 이어지지 않았다. 결국 밑빠진 독에 물 붓는 꼴이 됐다.

이번 정책도 업계의 반응은 뜨뜻미지근하다. 바뀐 게 없다는 것이다.

오히려 업계가 가장 골머리를 앓는 인력 문제부터 대기업 위주로 정책이 짜여졌다.

미국, 대만, 중국은 내로라하는 인력들이 죄다 팹리스 업체로 간다. 하지만 국내는 반대다.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등 굴지의 제조 기업들과 장비 업체들을 보고 대부분의 인력이 제조로 빠진다. 시스템반도체 인력 풀 자체가 적다는 얘기다. 시스템반도체 설계 분야에서 배출되는 석박사 인재는 1년에 20명이 채 안된다.

인력 이탈도 극심하다. 중소 팹리스의 경우 신입사원을 뽑아서 3년 이상 가르치면 중견, 대기업에서 해당 인력을 스카웃해가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그렇다고 전직 금지 가처분 신청 소송을 걸기도 어렵다. 대기업이고, (잠재)고객사이기 때문이다.

팹리스 업체들은 해외 인재나 전문고교 출신 인재를 뽑아가면서 인력난에 겨우 대처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는 인력 육성 정책 전면에 대기업에 수혜가 돌아가는 계약학과를 내세웠다. 대기업 계약학과에 간 학생들은 등록금 지원과 함께 졸업 후 해당 기업 채용시 우대를 받는다. 인력풀도 적은데, 중소기업의 채용마저 가로막는 셈이다.

소자-설계-제조 융합 인재 육성도 혜택은 팹리스 업체가 아닌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등 종합반도체기업(IDM)이 본다. 팹리스 입장에서는 반도체 설계 전공자 자체를 찾는 것조차 어렵다.

팹리스 업체 A사 대표는 “중소기업에 갈 가능성이 있는 우수 인력마저 대기업에서 뽑아가겠다는 건데, 정부 주도로 대기업을 육성하던 70, 80년대에나 봄직한 정책”이라며 “차라리 그 돈으로 팹리스에게 인건비를 지원하면 더 나은 근무환경을 갖춰 우수 인재를 영입할 수 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덩치 커진 R&D 투자, 할 업체도 없다

R&D 투자도 액수만 커졌지 이전 정책과 달라진게 없다.

내년부터 10년간 1조원이 투입되는 차세대 지능형반도체 중·장기 R&D 지원 분야는 인공지능(AI), 자동차, 바이오, 사물인터넷(IoT), 에너지, 로봇·기계, 반도체 신소자, 전력반도체다.

각 과제에는 수요기업 참여를 의무화한다지만 대량 양산으로 이어지는 건 별개다. 여기에 자동차, 로봇·기계, 전력반도체는 시장 포화 상태인데다 진입 장벽도 높다.

급변하는 시황 속에서 수년간 진행되는 중장기 프로젝트를 진행하기란 수요 기업도, 팹리스에게도 위험 부담이 크다. 규모가 작은 팹리스는 당장 다음 제품을 개발할 여유도 없는 게 현실이다.

애초에 국내에는 수요 기업이 제한적이다. 늘상 비좁은 내수 시장이 아니라 세계 시장을 겨냥해야 한다면서 역설적으로 R&D 정책에는 국내 수요 기업을 끼워넣은 셈이다.

이를 두고 국내 중견 팹리스 업체 B사 대표는 “20년 전 코아로직, 엠텍비전 등 규모 있는 팹리스들이 있었을 때 이같은 R&D를 추진했다면 국내 팹리스 업계의 경쟁력을 한층 높일 수 있었을 것”이라며 “R&D 과제 하나에 3년 투자할 수 있는 업체도 드문데 5년 이상의 중장기프로젝트는 어불성설”이라고 말했다.

국가가 정한 5대 전략 분야 중심 수요 연계 R&D 과제는 ‘얼라이언스 2.0’ 내에 속한 일부 팹리스 업체에게만 수혜가 돌아갈 가능성이 크다. ‘얼라이언스 2.0’에는 LG 계열사인 실리콘웍스, 현대차 계열사 현대오트론 등 7곳의 팹리스 업체가 포함됐다.

국책 프로젝트는 납품실적을 쌓는데는 도움이 될 수 있겠지만 물량 자체가 크지 않고 국가 기밀 유출 등에 걸려 이를 사업화하기도 어렵다.

팹리스 업체 C사 대표는 “국내 팹리스 업체의 경쟁 상대는 글로벌 업체”라며 “될 지 안될 지 모르는 R&D만 붙들고 있는 것보다 그 돈으로 차라리 인력 풀을 넓히고 스타트업을 지원해 생태계가 장기적으로 성장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해야한다”고 일갈했다.

 

생태계 육성, 숟가락만 얹었다

각 생태계 업체들이 직접적으로 체감할 수 있는 정책에 대해서도 쓴소리가 나왔다.

먼저 정부는 국내 3사 뿐인 파운드리 업계에는 세제·금융 지원을 하기로 했다. 파운드리 업체의 시설투자에 대한 세액공제 일몰기간 연장을 검토하고, 중견 업체에는 금융 지원까지 하겠다는 것이다. 중견 파운드리 업체는 DB하이텍뿐이다.

반면 팹리스에 대한 금융 지원은 전용 펀드, 스케일업 펀드에 그쳤다. 반도체성장펀드처럼 전용 펀드를 민간 벤처캐피탈(VC)이 운용하게 되면 단기 실적을 낼 수 있는 업체만 투자를 받을 수밖에 없다.

실제 반도체성장펀드에 투자를 받으려던 국내 팹리스 D사는 2년 내 성과를 낼 수 없다는 이유로 투자 대상에서 제외됐다.

D사 대표는 “제품에 따라 R&D 기간, 상용화 기간이 다른데 정부 펀드라면 장기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업체처럼 민간 VC들이 투자하지 않는 업체에 투자를 해야한다”며 “업계 전체가 수혜를 입는 것도 아니다”고 말했다.

멀티프로젝트웨이퍼(MPW) 및 시제품 제작, 반도체설계자동화(EDA) 툴 지원은 현재도 하고 있다. 달라진 게 없다는 얘기다.

상생협력 정책에 대해서도 정부가 대기업들의 전략에 숟가락만 올렸다는 반응이다.

파운드리 업체가 팹리스 업체에 공정·기술·인프라를 개방하는 건 당연한 얘기다. 팹리스는 공정과 기술, 인프라를 보고 파운드리 업체를 정하기 때문이다. MPW 확대도 이미 삼성전자가 정부 발표 이전 5나노까지 지원 대상을 넓히겠다고 밝힌 상황이다.

시스템반도체 생태계의 큰 축으로 부상하고 있는 디자인하우스에 대한 대책도 설계최적화 서비스 인프라(소프트웨어, IP 등) 지원에 그쳤다. TSMC는 대만 정부의 지원을 받으면서 디자인하우스와 IP를 공동 개발, 생태계를 다졌는데, 이같은 역할은 여전히 개별 파운드리 업체의 몫이다.

업계 관계자는 “발표 당시 현장에 있던 팹리스 업계 관계자들은 회의적인 반응을 보였다”며 “시스템반도체 산업 육성을 명목으로 국내 3사 뿐인 파운드리 업체에 세제·금융 지원을 하겠다는 것”이라고 못박았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