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8나노 첨단공정 디자인서비스 개시… 국내 디자인하우스 타격

삼성전자가 파운드리 전용반도체(ASIC) 설계를 수직계열화한다.

삼성전자의 100% 자회사 하만커넥티드서비스(HCS)가 삼성 파운드리를 사용하는 고객사들에 대한 ASIC 서비스를 시작한다. 공정은 7나노부터 28나노까지다.

TSMC처럼 자회사 디자인하우스를 통해 생태계를 구축하겠다는 계획이지만, 단기적으로는 삼성전자와 협력 중인 국내 디자인하우스 업체들이 타격을 입을 전망이다.
 

HCS, 첨단 공정 디자인서비스 개시

HCS는 최근 삼성전자 파운드리 ASIC 용역 사업을 하기 위해 반도체 설계자동화(EDA) 툴 라이선스를 받고 인력을 모집하고 있다.

이미 DB하이텍, 넥스트칩, 넥셀 등 국내 파운드리 업체 및 팹리스 업체의 인력 상당수가 HCS로 전직했다.

 

▲HCS 채용 공고에 ASIC 백엔드 엔지니어를 모집하는 글이 올라와있다./HCS 홈페이지 캡처
▲HCS 채용 공고에 ASIC 백엔드 엔지니어를 모집하는 글이 올라와있다./HCS 홈페이지 캡처

HCS에서는 7나노, 14나노, 16나노, 28나노의 첨단 공정을 쓰고자 하는 고객사들의 반도체 설계를 하게 된다. 전반부(Front-end) 설계와 후반부(Back-end) 설계 팀을 모두 꾸렸는데 상대적으로 후반부 설계 팀이 크다.

기존 파운드리사업부 디자인서비스팀은 물량이 많은 A급 고객사들을 대상으로 서비스를 한다면, HCS는 첨단 공정을 쓰지만 물량이 적은 B급 고객사들에 서비스를 할 것으로 추정된다.

업계 관계자는 “TSMC가 글로벌유니칩(GUC)을 자회사로 두고 키운 것처럼 삼성도 내부적으로 인하우스 디자인하우스를 만들어야한다는 데 의견이 모아졌다”며 “작년 하반기부터 준비를 해왔고, 올해 본격적으로 인력 채용에 나선 것”이라고 설명했다.
 

삼성 속내는… 글로벌 업체들 아닌 나머지 95% 고객 잡겠다

지금까지 삼성전자는 아무리 첨단 공정이라도 물량이 적으면 파운드리에서 받아주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일일이 각 고객사의 설계를 해주기에는 여력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기조가 바뀌기 시작한 건 지난해부터다. 7나노와 후공정에서 TSMC에 밀리면서 삼성전자 파운드리 사업부는 자사 시스템LSI 사업부 외엔 대형 고객사를 잡지 못했고, 12인치 팹 가동률도 80% 초반대를 벗어나지 못했다.

발등에 불이 떨어지자 잡은 게 가상화폐 채굴용 ASIC이다. 가상화폐 채굴용 ASIC은 8나노, 10나노 등 첨단 공정을 쓰지만 칩 당 수량이 12인치 웨이퍼 만여장 정도에 불과하다. 삼성전자는 국내 디자인하우스 업체들과 함께 가상화폐 채굴용 ASIC 설계 및 생산을 턴키로 수주했다.

업계 관계자는 “수익성도 높고 물량도 많은 글로벌 고객사는 전체 파운드리 고객사 중 5%에 불과한데, 이 업체들이 삼성 대신 TSMC를 택하면서 물량이 빠졌고 수익성도 악화됐다”며 “파운드리 사업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나머지 95% 고객을 잡아야했던 셈”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국내 디자인서비스 업계의 실력이 삼성전자에 비해 부족하다는 의견이 나왔다. 업계에서 가장 큰 디자인하우스인 알파홀딩스조차 10나노 반도체 백엔드 서비스까지밖에 제공하지 못한다.

TSMC 또한 자회사인 디자인하우스 GUC와 함께 파운드리 생태계를 구축했다. TSMC는 생산, GUC는 ASIC 설계 및 백엔드 서비스를 제작하는 식으로, 이 과정에서 함께 설계자산(IP) 등도 개발해가며 역량을 키웠다.

디자인하우스 업체 관계자는 “7나노 같은 고부가 공정을 쓰는 반도체를 국내 디자인하우스에게 맡기기엔 삼성 입장에서도 아까울 뿐더러, 해당 업체들이 그럴만한 실력이 없다는 점도 발목을 잡았을 것”이라며 “HCS를 통하면 이같은 부담감을 덜 수 있다”고 말했다.
 

왜 하필 HCS일까?… 소프트웨어 역량에 하드웨어까지

 

▲하만인터내셔널 인도 사업장./하만

HCS는 자동차, 통신, 게임, 커넥티드홈, 에너지, 유통, 헬스케어 등에 관한 소프트웨어 솔루션을 제공해오면서 잔뼈가 굵은 소프트웨어 업체다. 지난 2017년에만 200여개의 프로젝트를 수행했다.

모토로라, 휴렛팩커드(HP), 지멘스, 노키아, 소니에릭슨 등에 이동통신 소프트웨어를 공급해오던 영국 텔레카(Teleca)에서 출발했고, 심포니 테크놀로지 그룹의 심포니서비스(Symphony Services)와 합병해 엔지니어링 소프트웨어 외주 업체로 영역을 확장했다.

지난 2015년 하만인터내셔널그룹에 인수되면서 하만 관련 제품용 소프트웨어를 공급하기 시작했다. 삼성전자의 자회사가 된 건 지난 2017년이다.

이번 디자인하우스 서비스로 HCS는 기존 고객사에게 소프트웨어가 아닌 하드웨어로 솔루션을 제공하거나, ASIC 고객사들에게 맞춤형 임베디드 소프트웨어까지 공급할 수 있게 된다.

시스템이나 반도체에 임베디드 소프트웨어를 넣는 것보다 ASIC 같은 하드웨어를 탑재하면 시스템, 반도체에 필요한 컴퓨팅 성능이 줄어든다. 중앙처리장치(CPU)나 애플리케이션프로세서(AP)가 해야할 일을 해당 반도체가 해주기 때문이다.

업계 관계자는 “고성능 프로세서를 사는 것보다 ASIC 하나를 넣으면 전체 비용(BoM)을 줄일 수 있는 이점이 있다”며 “특히 전자부품의 단가를 줄이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자동차 업계에서 하드웨어 기반 솔루션에 대한 수요가 많다”고 설명했다.

 

국내 디자인하우스 업계에 미칠 여파는?

국내 디자인하우스 업계는 또 한번의 타격을 받을 전망이다.

지난해 말, 삼성전자 파운드리사업부 디자인서비스팀의 주도로 베트남에 삼성전자 전속 디자인하우스 업체가 생겼다. 그 어떤 국내 디자인하우스보다 큰 규모다. 이에 국내 디자인하우스 업계는 삼성전자 시스템LSI사업부의 외주 물량을 받아 사업을 유지하고 있는 상태다.

HCS가 7나노부터 28나노까지를 서비스한다면, 나머지 디자인하우스 업체들은 그 아래 공정으로 순위가 밀릴 수밖에 없다. 알파홀딩스 등 국내 디자인하우스 업체들에 제품을 맡겨온 삼성전자의 계열사나 한화테크윈 등의 국내 대기업들도 거래선을 바꿀 가능성이 높다.  

삼성전자 파운드리 사업부의 전체 생산량 중 28나노 아래는 300㎜ 팹(Fab)의 45나노 공정과 200㎜ 팹 뿐이다.

TSMC도 GUC를 자회사로 두고 파운드리 사업을 확장했지만, 삼성전자와는 케이스가 다르다. TSMC는 자사의 디자인하우스 역할을 하던 GUC를 중간에 인수한 것이고, 삼성전자는 처음부터 계열사인 HCS에 디자인하우스를 맡겼다.

TSMC 방식대로라면 경쟁사 숫자는 변함이 없지만, 삼성의 이번 결정으로 국내 업체들에게는 대형 경쟁사가 하나 더 생긴 셈이 된다.

업계 관계자는 “삼성 계열사인 HCS와 직원 수가 100명도 안되는 국내 디자인하우스가 경쟁을 할 수 있겠느냐”며 “국내 업체들은 중소기업 고객사만 상대하게 될 것인데, 문제는 중소기업 규모의 국내 팹리스도 손에 꼽는다는 점”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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