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기적으로는 매출 증가하지만… 자생력 확보 필요

삼성전자가 반도체 설계 일부분을 외주화하면서 국내 디자인하우스의 역할이 바뀌고 있다. 당장은 삼성전자의 물량으로 매출을 올릴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 자생력 확보에는 한계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

 

삼성전자 시스템LSI사업부, 반도체 설계 외주화

 

▲삼성 시스템LSI 사업부의 외주 물량으로 전속 디자인하우스 업계가 수혜를 입게 됐다./삼성SAFE 로고
▲삼성 시스템LSI 사업부의 외주 물량으로 전속 디자인하우스 업계가 수혜를 입게 됐다./삼성SAFE 로고

최근 삼성전자 시스템LSI사업부는 반도체 설계 후반부(Back-end)는 물론, 전용 반도체(ASIC)도 자사 파운드리 사업부의 전속 디자인하우스 업체들과 국내 반도체 설계 업체(Fabless)에 외주를 맡기기 시작했다.

시스템LSI 사업부 외 다른 사업부나 계열사가 국내 디자인하우스에 용역을 주는 일은 있었지만, 팹리스인 시스템LSI 사업부가 용역을 주는 건 이례적이다.

시스템LSI 사업부는 이전까지 반도체 설계의 전 과정을 자체 진행했다. 하지만 파운드리 사업부와 분리되고, 전사의 미래 비전으로 인공지능(AI), 사물인터넷(IoT), 자동차, 5세대(5G) 이동통신이 꼽히면서 다수의 반도체 개발 프로젝트가 시작됐다.

AI, IoT, 자동차, 5G 이동통신에는 삼성전자 시스템LSI 사업부가 현재 설계하고 있는 애플리케이션프로세서(AP), 모뎀, 이미지센서(CIS) 외에도 각종 반도체가 들어간다.

이에 내부 자원이 부족해지면서 일부를 외주로 돌렸고, 국내 디자인하우스 업체와 팹리스가 일감을 받게 됐다. CIS, PMIC 등 주력 제품의 백엔드 설계 외에도 ASIC 설계까지 맡긴다고 업계 관계자는 설명했다.

 

당장은 매출에 도움되지만… 비중 높아질수록 위험도 상승

이에 고사 위기에 처했던 국내 디자인하우스들은 당분간 호실적을 올릴 것으로 기대된다.

앞서 삼성전자가 베트남에 국내 디자인하우스보다 더 큰 규모의 전속 디자인하우스를 세우면서 업계에서는 국내 디자인하우스에 들어오는 주문량이 크게 줄어들 것이라고 우려했었다.

디자인하우스 업체 관계자는 “양산 여부는 아직 알 수 없지만 다수의 업체들이 개발 프로젝트에 가담하고 있어 용역 매출은 충분히 올릴 수 있다”며 “삼성 외주 물량 덕에 올해 매출액은 지난해보다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한 회사의 매출 비중이 높아질수록 위험(Risk)도 커지는 법이다.

삼성전자 전속 디자인하우스의 경우 삼성전자 시스템LSI 사업부에 용역을 받아 삼성 팹(Fab)에서 제품을 생산하는 구조가 만들어진다. 삼성 매출 비중이 그만큼 커지는 셈이다.

가뜩이나 국내 팹리스 매출 기반이 약한데 삼성 매출 비중이 높아지면 시스템LSI 사업부가 전략을 수정할 경우 큰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다.

게다가 시스템LSI 사업부와 파운드리 사업부가 맺은 독점 생산 계약이 내년 만료되는만큼 시스템LSI 사업부가 다른 파운드리 업체의 IP를 활용할 가능성도 크다. 굳이 삼성전자 전속 디자인하우스와 함께 개발을 할 필요가 없다는 얘기다.

업계 관계자는 “여러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것도 내후년부터는 시스템LSI 사업부와 파운드리 사업부가 100% 각자도생 체제로 움직이기 때문에 자생력을 확보해야한다는 목소리가 컸기 때문”이라며 “공정 IP를 다양하게 갖춘 다른 파운드리 업체를 쓸 가능성도 충분하다”고 말했다.

 

디자인하우스로서의 자생력은?

이같은 이유로 ASIC 용역보다는 자체 IP 확보, 국내외 고객군 확대 등 디자인하우스 스스로의 역량을 높여야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시스템반도체 생태계에서 디자인하우스는 외주 생산 업체(파운드리)와 팹리스 사이를 연결하는 다리다. 팹리스가 설계의 전반부를 끝내면 디자인하우스는 해당 파운드리의 공정에 맞게 이를 바꿔준다.

이전까지는 단순 용역 업체 취급을 받았지만, 디자인하우스가 ASIC 설계부터 후공정테스트(OSAT)까지 반도체 제작의 전 과정을 턴키로 제공하기 시작하면서 시스템반도체 생태계의 중요한 축이 됐다.

특히 디자인하우스의 역량은 IP와 고객군에 달려있다. 파운드리 업체 1위 대만 TSMC도 자회사 글로벌유니칩(GUC)과 함께 IP를 개발하고 고객군을 넓혀가면서 탄탄한 생태계를 구축했다.

업계 관계자는 “디자인하우스 업체가 자체 IP를 개발하면 파운드리 업체는 굳이 IP를 다양화할 필요가 없다”며 “국내외 중소 규모의 팹리스도 고객군으로 확보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고 설명했다.

 

▲시스템반도체 생태계 구조./알파홀딩스
▲시스템반도체 생태계 구조./알파홀딩스

하지만 국내 디자인하우스는 삼성 파운드리 사업부에 등록된 전속 디자인하우스조차 대부분 직원 수가 50명도 안 되는 규모다. 그나마 규모가 큰 알파홀딩스도 직원 수가 100명을 갓 넘긴 수준이다. 스스로 역량을 키우기에는 한계가 있다는 얘기다.

업계 관계자는 “인수합병(M&A)도 논의됐지만 그정도 자금력이 있는 업체도 없고, 그럴 마음들도 없다”며 “파운드리 업체와의 IP 공동 개발 등 현실적인 지원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저작권자 © KIPOST(키포스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