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시 경제 악화에 발목 잡혀 미팅 건수 40% 뚝… 하반기에야 풀려

올해 세미콘코리아 행사장의 분위기는 작년과는 확연히 달랐다. 작년에는 호황이 이어질 것이라는 기대감으로 가득했지만, 올해는 불황이 어느 정도로 얼마나 오래 지속될 것인지에 대한 우려가 곳곳에 들어찼다.

 

▲세미콘코리아 2019 개막식에서 아짓 마노차(Ajit Manocha) SEMI 최고경영자(CEO)가 환영사를 하고 있다./KIPOST
▲세미콘코리아 2019 개막식에서 아짓 마노차(Ajit Manocha) SEMI 최고경영자(CEO)가 환영사를 하고 있다./KIPOST

세미콘코리아는 세계 유일 반도체 산업협회인 국제반도체장비재료협회(SEMI)의 한 해 첫 행사다. 1월 한국을 시작으로 중국, 동남아, 북미, 유럽, 일본에서 차례로 세미콘이 열린다. 즉, 세미콘코리아는 그 해의 반도체 시장 분위기를 가늠할 수 있는 자리다.

행사 첫날, 반도체를 테스트할 때 반도체(chip)를 테스트 장비에 연결하는 프로브 카드(Probe card) 제조사 관계자는 “올해 반도체 시장이 워낙 안좋을 것 같아 카메라 모듈 테스트용 프로브 카드도 들고 나왔다”며 “모바일 시장이 안좋다지만, 진짜 안 좋은 건 반도체 같다”고 말했다.

반도체 중고 장비 업체 대표는 “상황이 예상보다 정말 안 좋다”며 “작년보다 부스는 2배 더 크게 냈는데, 들어오는 미팅 건수는 40% 줄었다”고 설명했다.

행사를 주최한 SEMI도 시장 상황이 녹록치 않을 것이라 전망했다. SEMI가 예측한 올해 반도체 장비 시장 규모는 595억8000만달러(67조3254억원)로, 지난해 620억9000만달러(70조1617억원)보다 소폭 줄어든 수치다.

 

▲연간 반도체 장비 시장 규모.(단위: 10억달러)/SEMI, KIPOST 재구성
▲연간 반도체 장비 시장 규모.(단위: 10억달러)/SEMI, KIPOST 재구성

 

불황의 원인으로 가장 먼저 지목된 건 거시경제다. 23일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짐 펠드한(Jim Feldhan) 세미코리서치 대표는 중국, 미국, 일본, 한국 등 주요 국가의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이 지난해와 비슷하거나 더 낮은 수준일 것이라 전망했다.

미국의 국채 금리 또한 0%에 수렴하고 있다. 미국의 국채 금리가 떨어진다는 건 돈이 시장에서 도는 게 아니라 가장 안전한 자산인 국채로 몰리고 있다는 뜻이다.

미-중 무역 분쟁의 무기 중 하나가 반도체, 즉 첨단 기술이라는 것도 불황에 한몫을 하고 있다. SK하이닉스는 미-중 무역 분쟁이 심화되자 중국 충칭 후공정 공장 물량을 국내 협력사로 돌렸다. 중국 현지에서 만든 반도체를 미국에 팔기가 까다로워졌기 때문이다.

수요도 지지부진하다. 아이폰XS, 갤럭시노트8 등 애플, 삼성전자 등 주요 스마트폰 업체들의 하이엔드 제품은 예상보다 판매량이 저조했다. 인텔의 중앙처리장치(CPU) 공급 부족 문제는 2분기가 넘어서야 해결될 전망이다. 짐 펠드한 대표는 올해도 PC와 모바일 기기 출하량이 각각 7.7%, 1.0% 줄어들 것이라 내다봤다.

메모리 시장 수요에 불을 지폈던 인터넷데이터센터(IDC) 업계도 데이터센터 신설 대신 기존 데이터센터를 최적화하는 방향으로 투자 방향을 바꿨다. 고성능 메모리 대신 쌓아놓은 재고를 쓰겠다는 얘기다.

 

▲지난해 종합반도체업체(IDM) 및 반도체 외주생산(Foundry) 업계 상위 업체들 설비 투자 규모./VSLI, KIPOST 재구성
▲지난해 종합반도체업체(IDM) 및 반도체 외주생산(Foundry) 업계 상위 업체들 설비 투자 규모./VSLI, KIPOST 재구성

메모리 제조사들도 설비 투자를 보수적으로 집행하기로 결정했다. 삼성전자는 평택 2층에 대한 추가 투자 계획을 협력사에게 알려주지 않고 있다. SK하이닉스는 올해 설비 투자 규모를 작년보다 40% 줄일 계획으로, 더 줄어들 가능성도 있다고 했다.

미-중 무역전쟁의 벽을 만난 중국 메모리 업계는 2020년에서야 설비 투자를 집행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이 불황은 언제쯤 끝날까. 인공지능(AI) 투자가 본격화되고, 5세대(5G) 이동통신과 자율주행 등의 기술이 보급화된다는 전제 아래 반도체 투자는 계속돼야 한다. 아직 이같은 기술을 현실로 옮길 수 있을 정도의 반도체가 나오지 않았다는 게 업계의 공통된 의견이기 때문이다.(2019년 1월 23일자 KIPOST <[세미콘 2019] >참고)

일단 업계가 희망하는 건 올해 하반기다. 새로운 서버 플랫폼이 출시되고, CPU 공급 부족 문제가 해소되는 시점이 올해 중순이기 때문이다. 메모리 제조사들은 상반기  재고를 하반기 때 소진할 수 있는 제품 위주로 쌓아둘 계획이다. SEMI도 장기적으로 반도체 시장은 성장할 수밖에 없다고 진단했다.

개막식에서 아짓 마노차(Ajit Manocha) SEMI 최고경영자(CEO)는 “작년 한 해는 업계가 훌륭한 성과를 거둔 성공적인 한해였지만, 올해 시장은 조금 걱정이 된다”며 “불확실성은 상존하고, 시장 상황은 어렵겠지만 파괴적인 기술의 등장으로 수요가 증가할 것”이라고 말했다.

저작권자 © KIPOST(키포스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