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우리의 생존이다

인도에서 돌아온 현장법사는 당 태종의 요청으로 저술한 ‘대당서역기’에 당나라가 이해한 세계관에 대해 글을 남겼다. '전륜왕이 아직 시기에 순응해 세상에 나지 않았을 때 섬부주는 네 주인이 나누어 다스렸다. 남쪽 상주의 나라는 날씨가 덥고 습해 코끼리를 기르기에 알맞다. 서쪽 보주의 나라는 바다와 맞닻하 있고 보물이 많이 난다. 북쪽 마주의 나라는 날씨가 춥고 척박해 말을 기르기에 알맞다. 동쪽 인주의 나라는 날씨가 따뜻하고 좋아 사람이 많이 산다.' 

그 시대에 동쪽의 인주에 해당하는 나라는 당나라고 북쪽의 마주는 돌궐(투르크), 남쪽 상주는 인도다. 서쪽 보주에 해당하는 나라는 비잔틴과 페르시아다. 세상은 사람, 말, 보물, 코끼리, 이 네 주인이 다스린다는 설은 인도의 '사천자설(四天子說)'에서 유래했는데 사천자설은 유라시아 대륙에 존재하던 서로 다르면서 중요했던 4개의 문명에 대해 이야기한다. 현장법사는 이 4개 문명에 대하여 '동쪽 인주는 매우 어질고 의롭다. 북쪽 마주는 천성이 거칠고 사남다. 남쪽 상주는 특이한 술법을 많이 익힌다. 서쪽 보주는 상업에 밝아 교역을 한다.'고 썼다. 

사천자설은 한때 유라시아 대륙의 수많은 민족사이에서 광범위하게 전해졌다. 9·10세기에 이르러 사천자설은 아라비아 여행가 이븐 와합의 여행기에서 또 다른 형태로 모습을 드러낸다. 유라시아 대륙 전체에 사천자설이 널리 퍼졌다는 사실은 당시 사람들이 자신들이 사는 세계에 대해 어떤 공통된 인식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사천자설은 자신의 문명을 더 가치있게 여겨 가장 높은 자리에 두기도 했지만 결코 다른 문명의 존재와 가치를 무시하지 않았으며 근대 서구중심의 식민지 시대가 도래하기 전까지 세계주의를 나타냈다. 이는 유라시아가 실크로드를 통해 문명교류를 하면서 서로 다른 문명들을 하나로 잇고 서로를 발견하고 평등하게 교류하는 토대가 된 것이라 할 수 있다.

20세기 중반 미국과 소련의 냉전체제가 끝나고 20세기 후반부터 21세기 초반 단일국가 미국이 패권을 지배하던 시기를 지나 중국의 부상으로 '2천자( 二天子)' 즉 요즘말로 'G2의 시대'가 도래했다. 미국이 무역전쟁을 일으키며 중국의 부상을 막으려고 하지만 장기적으로 중국의 성장은 막을 수 없는 큰 흐름이다. 21세기 중반 인도가 부상한다면 3천자(三天子) 즉 G3 시대가 될 것이다. 역사적으로 패권국가가 많아지는 시기에는 국제질서가 혼란스러워지면서 갈등이 많았다. 21세기를 살아가야 할 우리 자식들은 미중의 격돌사이에서 우리 세대가 살았던 시대보다 더 혼란스러운 시대를 살아갈 것이다.

 

중국 크리스마스 금지령, 한국인 선교사 추방

2018년 말, 일부 한국언론에 중국에서 크리스마스를 배척하는 움직임과 수용하자는 주장이 충돌한다는 기사가 나왔다. 필자의 지인인 중국여행 전문가 윤태옥 선생이 중국에 아는 사람들에게 물어봤더니 터무니 없는 주장이라는 게 확인되었다. 오히려 번화가에는 산타복장, 크리스마스 트리와 캐롤로 한국보다 더 난리법석이라고 한다.

‘중국’이라는 주어를 사용해야 할 때는 신중해야 한다. 우리나라 부천시 소사동 규모의 허베이성 랑팡시에서 크리스마스에 대한 부정적인 조치가 있었다는 것이 뻥튀기 된 것이다. 인구가 15억에 육박하는 대국에서 조그만 지방정부 몇 군데서 크리스마스 분위기를 억제하는 조치를 했다고 중국 전체를 매도하는 것은 한국인 선교사 추방 또는 비자발급 거부와 연관이 있는 것 같다. 중국은 종교는 자유지만 선교는 불법이다. 다른 사람의 사상의 자유를 침해한다는 이유다. 중국도 나름대로 법과 제도가 있고 우리는 이를 존중해야 한다. 유신정권의 박정희 대통령이 가정의례준칙을 만들어 민간의 습속에 깊숙이 간여했듯이 중국 지방정부에서 크리스마스에 흥청거리지 말자고 할 수 있다. 공산당이 지배하는 중국은 공산주의와 앙숙인 기독교 전도사 뿐만 아니라 이슬람 전도사와 불교 전도사도 같이 추방할 것이다. 지방정부의 작은 사건을 침소봉대하고 종교의 선교를 불법으로 하는 나라에서 전도사에게 비자를 발급하지 않는 일로 중국을 매도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

미중 무역전쟁이 격화되면서 중국 붕괴에 대한 글이나 동영상이 한국에 범람한다. 그럴듯하게 들리기도 하지만 정통 경제전문가들은 중국 붕괴를 함부로 이야기하지 않는다. 오히려 미국, 중국은 괜찮은데 한국경제의 미래가 큰 문제라는데 필자는 동의한다. 필자 또래는 1년에 100만명씩 태어났는데 요즘은 1년에 30만명씩 태어난다. 신생아가 70%가 줄어들어 한국은 일본보다 더 심각한 세계 최고수준의 인구절벽이 기다리고 있다. 세계질서는 다극화될 것이고 보호무역의 파도는 거세질 것인데 한국의 대외의존도도 세계최고 수준이다.

 

브레튼우즈 체제와 21세기의 다극화 체제, 그리고 한국

필자가 30년 정도 무역을 하면서 많은 나라 사람들을 만나봤는데 특히 중국사람들과 미국사람들을 많이 만났다. 중국에도 좋은 놈, 나쁜 놈이 있고 미국에도 좋은 놈, 나쁜 놈이 있다. 몇 년 전에 필자가 아는 기업의 대표가 미국인에게 사기를 당했는데 어떻게 미국사람이 그럴 수 있냐는 식으로 한탄을 했다. 그 분은 미국은 천조국에 선량하고 양심적인 사람들만 살고 있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국제무역을 하면서 확실히 느꼈던 것은 코리아 디스카운트가 있듯이 미국 어드밴티지와 차이나 디스카운트가 있다는 것이다. 

필자가 어렸을때 학교에서 중공군의 인해전술로 통일을 하지 못했다는 이야기를 여러 차례 들었는데 사실 중공군은 인해전술을 쓴 적이 없다. 중공군은 국공내전에서 닦은 실력을 바탕으로 기동성있게 전력을 집중한 것이었다. 냉전시대에 적국 중국에 대해 혐오스러운 감정 때문에 그런 단어를 만들어냈던 것 같다. 요즘은 덜하지만 10여년전만 해도 중국사람들이 머리를 잘 감지 않아서 지저분했다. 물이 귀한 중국에서 머리를 자주 안 감는 습관이 생기는 것은 당연하다. 지금도 세계 어디를 가든 중국사람들 떠드는 소리에 짜증을 내는 한국사람들이 많다. 우리보다 커뮤니케이션과 합의를 중시하는 중국사람들의 문화에서 자기주장을 강하게 내세우다가 목소리를 크게 내는 것은 우리가 이해를 해야 한다. 한국사람들이 떠드는 정도는 중국인과 조용하고 나긋나긋하게 이야기하는 일본사람의 중간정도 수준이다. 필자가 얼마전에 일본에 가서 이야기를 하다가 옆자리 일본 고등학생들이 흘깃 쳐다보는 것을 봤다. 필자의 목소리 크기가 일본사람들 기준에서는 지나치게 커서 무례하게 보여서 쳐다봤던 것이다. 일본사람들에게는 일본식으로 존중을 해야 한다. 중국사람들에게는 중국식으로 존중을 해야 한다.

지금의 세계경제 시스템을 브레튼 우즈 체제 (Bretton Woods)라고 한다. 1944년 서방 44개국 지도자들이 천조국 미국의 뉴햄프셔주 브레튼우즈에 모여 입안했고, 그 운영을 위해 국제통화기금(IMF)과 세계은행(IBRD)이 만들어졌다. 전승국 미국은 돈이 많이 드는 식민지 지배를 택하지 않고 2차대전 동안 곳간에 쌓인 금으로 금본위제 채택하고 세계경제를 지배하기 시작했다. 그 일환으로 자국의 시장을 패전국 독일과 일본에도 개방했으며 친미국가들은 고도성장을 이루었다.

남한은 브레튼 우즈 체제의 최대 수혜국이 되었다. 한국전쟁이 끝났을때 미국의 잉여농산물 원조물자로 끼니를 때우면서 대미수출로 경제발전을 시작한 것이다. 70년대에 필자의 집 근처에서 머리카락을 산다고 소리치며 다니는 장사꾼들이 있었다. 우리 동네 누나, 아줌마들 머리를 잘라서 그 장사꾼들에게 팔면 당시에 꽤 큰 돈을 받았다. 옆집에 가정형편이 어려워서 중학교를 못 간 긴 머리 예쁜 누나가 어느 날 갑자기 짧은 머리로 나타나서 깜짝 놀랐던 기억이 난다. 그 누나의 긴 머리가 어떤 미국여인의 가발로 쓰였을 것이다. 그렇게 판 누나들의 머리카락과 구로공단 어린 여공들의 피땀어린 노동 등 저임금 산업으로 자본을 축적한 남한은 조선, 철강, 화학, 반도체, 전자산업에서 세계 최정상의 경쟁력을 가진 국가로 떠올랐다. 남한은 브레튼 우즈 체제 덕분에 세계 최빈국에서 1인당 국내총생산(GDP) 3만달러의 세계 6위의 수출국으로 떠올랐다. 미국, 일본에서 들여온 기술과 자본, 또 냉전시대에 친미국가에 개방된 시장덕분에 고도성장을 했고 오늘같은 경제성장을 이룬 것이다. 한국의 기성세대들은 미국의 덕을 톡톡히 보면서 성장하고 늙어가고 있다. 해방이후 영어는 권력이 되어서 영어를 잘하는 사람들은 손쉽게 출세가도를 달렸고 기독교는 전세계에서 유례를 찾아볼 수 없을 만큼 남한에서 빠른 속도로 번성했다. 남한 국민 대다수가 친미 심지어는 숭미적으로 된 것은 브레튼 우즈 체제 이후 미국 덕분에 남한이 번성해왔기 때문이다. 봄에 보리수확 전까지 보릿고개라는 식량난을 겪으면서 굶주렸던 남한 사람들은 전세계가 부러워하는 세계 10위권의 경제대국이 되었다.

하지만 미국이 남한에 은혜를 베풀기 위해 남한을 해방시켜주고 식량 원조를 하고 수만명의 자국민을 희생해가면서 한국전쟁에 참가하고 브레튼 우즈 체제를 도입하고 미국 시장을 활짝 열어준 것은 아니다. 미국의 냉혹한 세계전략에 남한이 공산주의와 맞선 자본주의의 최전선에서 절묘하게 잘 맞았고 남한의 리더와 국민들은 미국의 세계전략과 체제를 철저히 따르면서 세계적인 경제강국으로 성장하였다. 네티즌들은 미국을 '천조국'이라 부르기까지 한다.

하드 파워뿐만 아니라 소프트 파워까지 강한 미국에 대해 대다수의 한국민들이 친미적 성향을 가지게 된 것은 당연한 역사적 귀결이다. 그런데 이제 판이 바뀌고 있다. 미국은 무역적자, 재정적자 쌍둥이 적자로 달러를 수조달러씩 찍어내다 보니 금값은 폭등하였고 달러는 기축통화의 지위가 점점 약해지고 있다. 미국의 인플레이션 억제를 도와줬던 중국의 저임금 노동집약적 경제는 미국경제의 60%규모까지 쫓아오면서 첨단산업에서 미국을 위협하기 시작했다. 미중 무역전쟁은 금방 끝날 전쟁이 아니다. 앞으로 수십년간 미중간에는 치열한 무역전쟁이 이루어질 것이고 인도의 부상은 미국 달러패권중심의 체제에서 한층 더 다극화 된 세계질서를 강요할 것이다.

그런데 천조국 미국의 은혜로 성장한 한국의 경제는 중국의 부상과 더불어 중심축이 바뀌었다. 미국에 대한 수출비중은 2018년 기준 10%를 조금 넘는 수준이나 중국, 홍콩에 대한 수출비중은 30% 중반대에 이른다. 2000년대 들어와 한국경제의 성장은 미국보다는 중국에 훨씬 더 크게 의존했다. 현재 세계 6위 규모의 GDP와 구매력(PPP) 기준 GDP에서 3위의 경제를 가진 인도는 21세기 중반에 미국을 추월할 것이라는 예측도 있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인도경제를 '달리기 시작한 코끼리'로 묘사하며 장기적인 성장을 예고했다.

이제 미국은 세상의 중심, 천조국의 지위를 잃어가고 있다. 필자의 눈에는 조선시대 후기 명나라가 망한 뒤에도 명나라를 숭상하며 소중화사상에 빠져 있던 조선과 요즘의 한국 기성세대들이 친미, 혐중에 심지어는 숭미, 반중에 빠져 있는 것이 비슷해 보인다.

친미, 숭미, 반미, 친중, 혐중 다 필요 없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우리의 생존이다. 21세기에는 중국, 인도의 부상으로 다극화된 세계질서로 바뀔 것이, 그 갈등의 중심지 한반도는 또 다시 격동의 세월을 겪을 것이다. 우리에게는 지금 보편적이고 균형잡힌 세계관이 필요하다. 필자는 21세기의 보편적이고 균형잡힌 세계관을 실크로드 유목민의 역사에게 얻을 수 있다고 굳게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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