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성능이 아니라 기술 주도권과 신뢰성 문제

자율주행 시장을 두고 모빌아이 진영과 엔비디아 진영이 치열한 경쟁을 펼치고 있다. 



두 진영 모두 목표는 ‘자율주행’으로 같지만, 출발부터 접근·구현 방식은 정반대다. 양 진영에 속한 자동차 업체의 속내 또한 다른 가운데 둘 중 누가 자율주행 시장에 승리의 깃발을 꽂을 수 있을까. 



시작부터 다른 모빌아이와 엔비디아



모빌아이와 엔비디아는 모두 소프트웨어 알고리즘과 하드웨어인 반도체를 묶어 자율주행 솔루션을 제공하고 있다. 


하지만 두 업체의 출발점은 정 반대다. 모빌아이는 알고리즘에서, 엔비디아는 그래픽처리유닛(GPU)에서 출발했다.


모빌아이는 1999년 설립 후 카메라에서 수집된 정보를 분석, 차량을 제어하는 소프트웨어 알고리즘에 주력했다. 이를 기반으로 한 시스템온칩(SoC) ‘아이큐(EyeQ)’를 선보인 건 설립 후 10년이 지난 2008년이었다. 


반면 엔비디아는 GPU가 이미지나 영상 등 대용량 멀티미디어 데이터 처리에 특화돼있다는 점을 내세웠고, 여기에 인공지능(AI) 알고리즘을 더해 지금의 자율주행 솔루션을 내놨다. 



모빌아이 - 기준서를 줄테니 나를 따르라



모빌아이의 소프트웨어 알고리즘은 기본적으로 인과관계에 기반을 둔다. A라는 상황이 주어지면 B라는 기능이 작동하게 만드는 방식이다. 


예를 들어 앞에 있는 차량과 가까워지면, 모빌아이의 아이큐는 전방 카메라가 읽어들이는 앞 차량의 이미지 크기 변화를 분석, 속도를 계산해 충돌소요시간(TTC)을 산출하고 추돌 전 최대 2.7초 전에 경보를 울린다.


모빌아이는 결과값의 신뢰성을 높이고 알고리즘을 단순화하기 위해 조건을 한정했다. 카메라의 성능이나 제조사는 물론, 차량에 카메라를 부착해야하는 위치와 그 방법 등을 기준서에 제시했다. 일종의 제품 설명서를 준 셈이다. 


프로그래머블반도체(FPGA)인 ‘아이큐’도 마찬가지다. FPGA는 밑그림만 그려진 그림처럼 고객사가 원하는 대로 색을 덧입혀 기능을 조정할 수 있다. 하지만 모빌아이가 그려놓은 밑그림에서 벗어나면 알고리즘이 동작하지 않는다. 


▲모빌아이의 아이큐 세대 발전사./모빌아이, KIPOST 재구성


모빌아이가 갖고 있는 또 하나의 강점은 데이터베이스(DB)다. 모빌아이는 고객사에게 자사 칩을 토대로 진행한 도로 주행 테스트 결과 등을 공유할 것을 요구하고, 이 데이터를 기반으로 알고리즘을 향상시킨다.


뿐만 아니다. 3세대 아이큐(EyeQ)에서부터는 ‘도로경험관리(REM)’ 기능을 지원한다. 각 차량들의 화상·위치 데이터를 클라우드 서버로 보내 교통 상황을 실시간으로 반영, 고해상도(HD) 지도까지 만들겠다는 전략이다.


▲암논 샤슈아 인텔 부사장 겸 모빌아이 최고경영자(CEO)는 올 초 열린 ‘CES 2018’에서 4세대 아이큐를 장착한 차량으로 도로 및 주행 환경 데이터를 수집하겠다고 발표했다./인텔


이 계획은 모빌아이가 올 초 4세대 아이큐(EyeQ)를 장착한 차량을 통해 데이터를 수집, 주행가능 경로, 차선 및 도로 경계선, 기준점으로 사용되는 랜드마크 등이 포함된 로드북을 만들겠다고 발표하면서 가시화됐다.



엔비디아 - 인공지능(AI)이 너희를 이롭게 하리라



▲엔비디아 자율주행 칩(SoC) 제품은 모빌아이의 아이큐 솔루션보다 막강한 성능을 자랑한다./엔비디아, KIPOST 정리


모빌아이의 자율주행 솔루션이 완제품 개념이라면, 엔비디아의 자율주행 솔루션은 반제품이다. 엔비디아가 내놓은 ‘드라이브 PX’ 시리즈는 고성능 GPU를 탑재한 SoC를 기반으로 한 일종의 개발키트(PDK)다.


드라이브 PX에는 AI 알고리즘이 내장돼있다. 차량 주변 상황에 대한 기본 코딩 작업을 하고 카메라나 라이다 등 각 센서를 연결, 주행하면 이 데이터를 기반으로 AI가 ‘학습’을 하게 된다. 


이후 SoC에 학습된 인공지능(AI)을 담으면, 자율주행 칩 솔루션이 완성되는 형태다.


각 센서의 위치나 성능, 제조사 등에 대한 가이드라인은 제시하지만 강제사항은 아니다. 때문에 엔비디아의 솔루션은 기본적으로 열린 생태계다. 완성차 업체가 자사 부품 업체들의 제품을 연결하고 주행 DB를 구축, 자율주행 알고리즘을 만들 수 있다. 



자동차 업계의 속내



결과적으로 완성차 입장에서 모빌아이의 자율주행 솔루션은 차량에 빠르게 적용, 통합할 수 있지만, 기술 주도권을 쥐기는 어렵다. 


모빌아이가 5세대 아이큐에서 구축하겠다고 한 오픈 소프트웨어 플랫폼도 운영체제(OS)나 기능의 문제라 자율주행의 핵심 기술을 가지고 있는 게 모빌아이라는 사실은 변함이 없다.


모빌아이는 실제 안전한 주행을 수학적으로 정의, 공식화한 ‘책임 민감성 안전(RSS) 모델’을 오픈 소스로 공개하고 기술 표준화의 주도권을 확고히 하려하고 있다.


▲모빌아이와 엔비디아 진영 현황. 사실상 모빌아이 진영에서 완전 자율주행에 협력하고 있는 업체는 BMW와 콘티넨탈, 델파이 뿐이다./KIPOST 정리.


때문에 상하이자동차 등 대다수 완성차(OEM) 업체는 모빌아이의 자율주행 솔루션 자체가 아닌 도로경험관리를 비롯한 데이터 공유 정도에만 협력하고 있다.


엔비디아 솔루션을 활용하면 각 사마다 독자적인 자율주행 생태계를 구축할 수 있지만, 신뢰성이나 안전성을 단시간에 확보하기 어렵다. 


AI 알고리즘이 배울 수 있는 데이터가 많을수록 신뢰성과 안전성이 높아지는데, 각 업체가 서로의 데이터를 공유하려 하지 않기 때문이다. 시스템 개발은 물론 각 차량의 데이터를 공유할 클라우드 서버 구축 비용이 상대적으로 많이 든다는 것도 단점이다.



미래 주도권은 누구에게?



모빌아이가 인텔에 인수된 후 자율주행 칩 솔루션에 대한 논의는 성능에서 기술 주도권이나 신뢰성, 양산 가능성 등으로 넘어오고 있다. 


양사가 발표한 계획을 보면 엔비디아 진영의 자율주행차 출시 시점이 2020년으로 모빌아이 진영보다 1년 빠르다. 하지만 엔비디아의 자율주행 솔루션이 보급화될 수 있을 정도로 기술적 완성도를 갖췄느냐에 대해서 업계는 부정적이다. 


자동차 업계 관계자는 “엔비디아의 칩이 성능 측면에서는 월등히 좋지만, 대량 양산할 정도로 신뢰성이나 안전성을 확보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라며 “자율주행 칩은 독자 개발하고, GPU만 가져다 붙이려는 움직임도 있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생태계 주도권을 놓치지 않으려는 완성차 업계 특성상 모빌아이가 ADAS에서 벗어나 자율주행 업체로 거듭나기는 힘들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실제 엔비디아 진영의 완성차 업체들은 모빌아이의 ADAS 솔루션을 차량에 탑재하면서도 자율주행 솔루션을 별도 개발하고 있다. 


또다른 자동차 업계 관계자는 “자율주행용 반도체의 관건은 이제 성능이 아닌 신뢰성과 안전성의 문제”라며 “이를 확보할 수 있을 정도로 알고리즘을 고도화하려면 자율주행 차의 양산 시점은 양 진영의 목표 시점보다 훨씬 뒤일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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