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세공정·IP 포트폴리오 강화하고 생태계도 키워야

▲삼성전자 화성캠퍼스 EUV라인 조감도./삼성전자
▲삼성전자 화성캠퍼스 EUV라인 조감도./삼성전자

삼성전자 파운드리 사업부가 분리된 지도 1년 6개월이 넘었다. 파운드리 생태계(SAFE)를 조성하고 공정 포트폴리오도 다변화했지만 성장 속도는 더디다.

그런만큼 내년은 삼성 파운드리 사업부에게 시장 판도를 바꿀 수 있는 해다. 경쟁사인 TSMC에 2016년은 패키지 기술로, 올해는 7나노로 밀렸지만 내년에는 극자외선(EUV) 기술을 적용한 삼성의 7나노 공정도 양산을 시작한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 7나노 공정을 쓸 대형 고객사를 잡지 못한 것은 아니지만, 여전히 주 공급사는 TSMC다. 무엇이 문제일까.

 

가장 중요한 것, 기술 : 삼성 < TSMC

 

파운드리 업체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미세공정과 설계·공정자산(IP) 포트폴리오다.

글로벌파운드리(GF)의 포기로 최신 로직 공정인 7나노 경쟁에는 삼성전자와 TSMC만 참전한다.

삼성의 7나노 양산 계획은 차질 없이 진행되고 있다. 파일럿 생산에 돌입한 상태로, 현재 진행 중인 프로젝트 중 베타(β)2부터 양산 체제로 전환할 것으로 보인다. 시기는 빠르면 내년 1분기다.

 

▲각 사의 7나노 공정 비교. 인텔의 10나노는 타사의 7나노와 비슷한 성능을 낸다./ICKnowledge
▲각 사의 첨단 공정 비교. 인텔의 10나노는 타사의 7나노와 비슷한 성능을 낸다./ICKnowledge

삼성의 7나노 LPP(Low Power Plus) 공정과 타사의 공정을 비교해보면 미세화 지표인 게이트 간격(CPP·Contacted Poly Pitch), 배선 간격(M2P·Metal 2 Pitch)은 삼성이 타사보다 우월하다.

하지만 트랙 높이(Track height)와 트랜지스터 밀도 지표에서는 삼성전자가 가장 밀린다. 삼성의 7나노 LPP 공정은 1㎟ 면적에 트랜지스터 9530만개를 구현하지만, TSMC의 7FF 공정은 같은 면적에 9649만개의 트랜지스터를 구현할 수 있다.

때문에 삼성전자는 내부적으로 EUV 기술을 핵심 층 일부에만 적용할지, 전면 적용할지 검토하고 있다. EUV 적용 층을 늘리면 밀도를 높일 수 있는 여지가 생긴다.

TSMC 또한 내년 2분기 EUV 기술을 적용한 7나노 FF+ 공정 양산을 시작한다. 7나노 FF+ 공정은 이전 7FF 공정보다 전력 소모량이 10% 적고 셀 크기도 15% 줄일 수 있다. TSMC는 지난 10월 7나노 FF+ 공정을 처음 테이프아웃(Tape out·설계 완료 후 생산 직전 단계에 있는 것)했다.

 

▲지난해 기준 TSMC의 공정 포트폴리오./TSMC
▲지난해 기준 TSMC의 공정 포트폴리오./TSMC

공정 포트폴리오도 TSMC가 삼성보다 넓다. 실리콘게르마늄(SiGe), 미세전자기계시스템(MEMS), 갈륨나이트라이드(GaN) 등 특수 반도체 생산 라인도 갖추고 있다.

지난해 1년간 TSMC의 웨이퍼 처리량은 12인치 웨이퍼 기준 1100만장이 넘었지만, 삼성전자의 연간 웨이퍼 처리량은 300만장 정도에 불과하다. 화성 EUV 라인은 EUV 관련 공정만 진행되는 곳이라 웨이퍼 처리량이 크게 늘어나지는 않는다. 7나노 공정 소요 시간만 4달이다.

후공정(패키지) 기술력도 TSMC가 우월하다. 지난 2016년 애플은 TSMC와 삼성에게 인쇄회로기판(PCB) 두 장 사이에 애플리케이션프로세서(AP)를 넣을 수 있을만큼 AP의 두께를 줄여달라고 요구했다. 삼성은 관련 솔루션이 없었지만 TSMC는 수년간 투자해온 패키지 기술로 이를 수주해냈다.

TSMC는 팬아웃 웨이퍼레벨패키지(FoWLP) 기술인 ‘인포(InFO)’를 3세대까지 발전시키는 한편 내년 1분기에는 고성능컴퓨팅(HPC) 반도체용 패키지 기술 ‘CoWoS(Chip-on-wafer-on-substrate)’까지 상용화할 계획이다.

삼성은 패널레벨패키지(PLP)와 2.5D 패키지 등을 신기술로 내세우고 있지만, PLP는 아직 저밀도 반도체밖에 커버하지 못하고 있고, 2.5D 패키지는 메모리 덕에 그나마 수요가 꾸준하다.(2018년 11월 2일자 KIPOST <삼성전자, RDL 인터포저·Fo SiP 키운다> 참고)

물론 삼성도 이 점을 감안, 공정 포트폴리오를 강화하고 있다. 전력 반도체 수요가 큰 8인치 보완 투자도 진행했다. 별도 생산 라인에서 진행하던 멀티프로젝트웨이퍼(MPW)와 엔지니어링 샘플(ES) 작업도 양산 라인에 끼워넣었다.

다만 전체 생산량은 크게 늘어나지 않고 있어 눈에 띄는 효과는 없다. 최근 신규 투자를 발표한 평택 2공장 총 4개 라인 중 최소 2개가 파운드리 용도로 배정됐는데, 내년 수주량을 감안해 생산 라인을 확대할 여지도 있다.

 

ASIC조차 밀리나… “IP 지원 부족”

 

삼성전자가 파운드리로 두각을 나타낼 수 있었던 것은 주문형 반도체(ASIC) 덕이었다. ASIC은 고객사의 요청대로 IP를 구성, 설계해주는 서비스로 초기에는 반도체 설계(팹리스) 업체와 디자인하우스가 전개해왔다.

TSMC가 디자인 생태계인 DCA(Design Center Alliance)를 통해 ASIC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을때 뒤늦게 파운드리 사업을 시작한 삼성은 자체 반도체 설계 기술을 바탕으로 애플 등의 물량을 턴키로 수주, 시장 점유율을 높였다.

당시 삼성은 ASIC에 필요한 IP도 지원했는데, 2015년엔 자사의 IP 라이브러리가 아닌 IP 업체로부터 받은 설계 라이브러리까지 제공해 문제가 되기도 했다. 파운드리 업체는 통상 IP를 구매해 자체 라이브러리를 만들고, 매출액의 일정 부분을 로열티로 IP 업체에 지급해야하는데 이를 무시한 것이다.

파운드리 사업부가 독립하고 나서 이같은 문제는 사라졌다. 신뢰성을 확보하기 위해 내부 ASIC 역량을 제한하고, IP 또한 SAFE 프로그램을 통하거나 고객사가 별도로 라이선스하게 했다.

법적 문제는 사라졌지만, 늘 제공해주던 IP를 별도로 구해야 하자 일각에서는 “IP 지원이 부족하다”는 볼멘소리가 나온다. 특히 중소업체들은 삼성전자에만 문의하고 디자인하우스는 찾지 않는 경우가 많아 IP가 부족하다는 오해를 하는 경우가 많다고 업계 관계자는 설명했다.

반대로 TSMC는 지난 2016년 내부 ASIC 역량을 대폭 보강하고 설계 협력사(DCA)를 재정비했다. 양사 중 시장 상황과 맞아떨어진 건 TSMC였다. 가상화폐, 인공지능(AI) 등이 맞물리면서 ASIC 수요가 증가했기 때문이다. IP 포트폴리오가 넓고 설계 협력사가 많아 대기업부터 중소업체까지 모두 아우를 수 있다는 것도 강점이었다.

업계 관계자는 “이전까지 ‘ASIC’이라고 하면 삼성전자가 업계 최고라는 인식이 있었는데, 지금은 TSMC가 더 낫다는 이야기도 나온다”며 “모든 업체가 자신이 원하는 반도체를 만들고 싶어하는데, 파운드리라고 해서 ‘생산’에만 집중하는 것은 옛날 말”이라고 설명했다.

 

‘삼성’과는 비교도 안되는 생태계… 자생력 부족

 

삼성 SAFE 프로그램 내 디자인하우스 협력사들이 IP를 지원하는데도 IP가 부족하다는 얘기가 도는 것은 삼성 파운드리 생태계가 ‘삼성’에 비해 너무 작다는 것과도 맞물린다.

TSMC의 설계 협력사는 20곳에 달하지만 삼성전자의 공식 설계 솔루션 파트너(DSP)는 이실리콘(esilicon), 베리실리콘, 패러데이, 알파홀딩스, 하나텍, 애브넷, 가온칩스 등 7개사에 불과하다.

이 중 삼성 전속 디자인하우스는 국내 업체인 알파홀딩스, 하나텍, 가온칩스 뿐인데 모두 연매출 1000억원 아래의 중소기업이다. 삼성전자 파운드리 사업부의 올해 연매출이 100억달러(11조1200억원) 이상인데, 100분의 1도 안되는 셈이다.

 

▲TSMC의 디자인하우스 글로벌유니칩(GUC)과 UMC의 디자인하우스 패러데이, 삼성전자의 디자인하우스 알파홀딩스의 매출 비교.(단위: 억원)/각 사, KIPOST 정리
▲TSMC의 디자인하우스 글로벌유니칩(GUC)과 UMC의 디자인하우스 패러데이, 삼성전자의 디자인하우스 알파홀딩스의 매출 비교.(단위: 억원)/각 사, KIPOST 정리

다른 파운드리 업체의 디자인하우스와도 차이가 크다. 삼성 디자인하우스 중 가장 큰 알파홀딩스의 지난 3분기 매출은 TSMC의 디자인하우스인 글로벌유니칩(GUC)의 14분의 1, 패러데이의 5분의 1에 불과했다. 디자인하우스 업체가 주로 중소형 고객사들을 상대한다는 점을 감안하면 아직 한참 부족한 성적이다.

삼성은 SAFE 프로그램을 통해 디자인하우스 업체들에 제품개발키트(PDK) 교육 등을 지원하고 있지만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애초에 워낙 규모가 작아 인력을 확보하거나 영업력을 강화하는 것조차 쉽지 않기 때문이다.

알파홀딩스는 수익성이 높지 않은 반도체 대신 바이오, 소재 등에 투자하면서 설계 엔지니어의 절반이 회사를 떠났다. 하나텍은 인력난에 마이스터고 출신 고졸 인력을 채용할 계획을 세우고 있다.

TSMC는 GUC에 지분 투자를 해 힘을 실어줬고, 동반 성장했다. 현재 GUC의 이사회 구성원은 대부분 TSMC 전현직 임원들이다. UMC도 자회사인 패러데이를 손꼽히는 디자인하우스 업체로 키웠다.

삼성전자 메모리 사업부도 혼자 힘만으로 기술 발전이 어려워지자 최근에는 국내외 협력사에 엔지니어를 파견해 연구개발(R&D) 등을 돕게 하고 있다. 인력 공유가 충분히 이뤄질 수 있는 분위기가 조성돼있다는 얘기다.

삼성과 생태계 내 디자인하우스 업체들이 지금처럼 각자도생하는 구조라면 기술력이 아주 뛰어나지 않고서야 현 상태를 벗어날 수 없다. 대형 고객사 물량이 1년 내내 유지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전속 디자인하우스 업체들의 역량은 삼성 파운드리 사업의 매출로 이어진다.

업계 관계자는 “파운드리 사업의 축은 기술과 생태계”라며 “대만의 파운드리 사업이 빠르게 성장할 수 있었던 것도 생태계를 탄탄히 조성한 덕”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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